블로그 이미지
경기도 김포시 양촌읍 김포한강4로 278번길 7-15(석모리 882-2) 교회 031-996-9100 목사님 010-2500-2004 e-mail : jaekimpst@gmail.com 선교후원 : 농협 301-0068-4817-81
소망지기

태그목록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살았다고하나 죽은 자

2019. 1. 13. 14:39 | Posted by 소망지기

 

2019. 01. 13. 주일 오전예배

 

요한계시록 3:1-3

 

 

어떻게 신앙생활하는 것이 행함이 있는 믿음의 모습일까요? 사데교회는 난공불락의 안정함이 보장받는 지리적 이점과 사금을 채취하여 경제적으로 부유한 도시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화려함과 풍성함으로 그 명성이 널리 퍼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살았다고 하나 죽은' 교회라고 평가합니다. 그 이유는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온전한 행휘로 말미암는 믿음은 어떤 모습일까요?

 

1. '일깨어'(Wake up, 2절).

'죽어가는 신앙'을 다시 살리는 길은 자기교만과 자기만족에 사로잡혀 있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과 그의 뜻으로 항상 '깨어'있어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으로부터 신랄하게 책망받은 이유는 잘 안다고 하지만 잘못 알고, 잘못 행하고, 잘못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보다는 먼저 바른 말씀과 바른 믿음으로 깨어있어야 합니다.

 

2. '생각하고'(Remember, 3절).

'행함이 있는 믿음'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가 받은 은혜와 믿음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기억하다' (히:'자카르' 헬:'므네모뉴오')는 그 뒤에 구체적인 행위를 동반하는 동사입니다. 그래서 '행위의 온전함'이란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보다는 이미 받은 은혜를 되새기며 그것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3. '회개하라'(Repent, 3절).

'행위의 온전함'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회개입니다. 참된 믿음은 새롭고 대단한 일을 이루는 것만이 아니라 항상 은혜의 자리로 되돌아가려는 삶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말하는 부흥은 항상 회개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 결과 '흰옷'을 입을 자격이 주어집니다(계3:18, 7:14, 19:8). 그래서 '행함이 있는 믿음'은 지금 우리 안에서 시작됩니다.

'주일예배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믿음을 직장에서 보이리라  (0) 2019.01.20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0) 2019.01.06
우리의 교회가 위험합니다!  (0) 2018.12.30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2019. 1. 6. 15:00 | Posted by 소망지기

 

2019. 01. 06. 주일 오전예배

 

야고보서 2:18-22

 

 

2019년 한 해의 표어를 소개합니다. 우리가 가진 예수님을 향한 믿음이 단순히 구호나 개인적인 고백의 영역을 넣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믿음의 모습이 되길 바랍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을 19절에서는 귀신들과 같이 여기고 있습니다. 반면에 행함이 있는 믿음을 아브라함(21절)과 라합(25절)의 예를 들면서 행함과 믿음은 각각 구분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말씀합니다(22절). 어떻게 하면 행함이 있는 믿음이 될 수 있을까요?

 

1. 믿음이 움직이게 놓아 주십시오.

믿음이 행함으로 움직이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자기의 고집과 게으름, 무관심이 믿음의 행함을 가로막고 억누르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움직이도록 처음에는 작은 행동이지만 조금씩 순종하고 실천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참고, 갈 5:16, 18절, 25절). 믿음이 행동으로 나타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입니다.

 

2. 말보다는 행동드로 실천하십시오.

"네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는 것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나타내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불신자들을 향해 굳이 말로 설명하고 가르치기보다는 묵묵히 믿음의 삶을 사는 것을 먼저 그들에게 보여 주어야 합니다. 오늘날은 복음에 대하여 모르는 시대가 아니라, 복음으로 사는 사람들이 드문 시대입니다. 입보다는 몸이 움직이게 합시다.

 

3. 완전함이 아니라 온전함으로 행하십시오.

세상은 성도들에게 완전하고 완벽한 종교인의 모습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완전한 삶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은 완전할 수 없음을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이게 '온전함'(헬: '텔레이오스' = 끝까지, 완전한, 온전한)을 요고합니다. 이는 비록 허물과 약함이 있음에도 끝까지 믿음으로 극복하며 나아가는 신실함의 의미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이 믿음의 걸림돌이 아니라, 믿음의 이유가 되어야 합니다.

'주일예배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았다고하나 죽은 자  (0) 2019.01.13
우리의 교회가 위험합니다!  (0) 2018.12.30
구유에서 십자가까지  (0) 2018.12.23

우리의 교회가 위험합니다!

2018. 12. 30. 15:13 | Posted by 소망지기

 

2018. 12. 30. 주일 오전예배

 

사도행전 2:41-47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인들의 모임을 '교회(에클레시아)'라고 부른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당시 '에클레시아'란 기독교적인 의미의 용어가 아니라,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 시대부터 사용되던 정치적이고 세속적인 용어였습니다. 그런데도 초기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의 모임을 '에클레시아'라고 부른 이유는 분명합니다. 다음과 같은 교회의 본질적 특징을 보면서, 진정한 교회(에클레시아)가 되기 위해서 우리에게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1. '그 말을 받은 사람들'(41절).

예수님을 믿기 시작한 사람들에 대하여 말씀을 '듣고'라고 하지 않고 '받고'(헬: '아포테코마이')라고 합니다. '받다'라는 표현은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만 사용한 단어인데 다른 곳에서는 '영접하다'(눅9:11, 행18:27, 21:17, 28:30)로 번역되었습니다. 따라서 교회를 이룬 사람들은 단순히 말씀을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듣고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2.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46절).

기독교인들에게 성전의 의미는 예배와 제사를 드리는 장소가 아닙니다. 예수님도 성전에 가셨지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함이었습니다(눅19:47, 20:1, 21:37, 22:53, 24:53). 따라서 제자들과 믿는 성도들도 전도하기 위해 성전에갔습니다. 이미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바른 복음과 말씀을 전하려는 각별한 노력과 사랑의 표현입니다.

 

3.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47절).

'구원받는 사람을 더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단지 전도의 열매를 의미할까요? 죽어서 천국 가는 사람들을 의미할까요? 저자인 누가를 통해 말씀하시는 '구원'의 의미를 살펴보면 단순히 믿는 사람이 아니라, 믿음에 합당한 행위와 모습을 보여 주는 의미의 구원을 말씀합니다(눅7:50, 8:48, 17:19, 18:42). 따라서 교회는 교인 수의 증가만이 아니라 구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하는 곳입니다.

'주일예배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0) 2019.01.06
구유에서 십자가까지  (0) 2018.12.23
우리의 시간이 위험합니다!  (0) 2018.12.16

구유에서 십자가까지

2018. 12. 23. 15:17 | Posted by 소망지기

 

2018. 12. 23. 주일 오전예배

 

누가복음 2:10-14

 

 

 

하나님이 친히 인간의 몸을 입으신 예수님의 탄생은 신비적이며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삶의 전 과정을 살펴보면 믿는 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아주 큽니다. 예수님의 일생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구유에서 십자가까지'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삶이 성도들에게 주는 도전과 위로는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은 작은 것을 통해서도 영광 받으십니다.

예수님의 삶에 등장하는 '목자' '강보' '구유' 등의 의미나, '목수' '나사렛' '십자가' 등의 의미는 부유함이나 높음이 아닌 비천한 상황을 암시합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은 가난하고, 낮고, 비천한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과 사람들의 평화를 이루셨습니다. 그렇다면 믿는 성도들도 '큰 것'만이 아닌 '작은 것'으로도 능히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은 변방을 중심으로 만드십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종교지도자들이 아닌 목자나 동방박사에게 알리셨고, 종교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이 아닌 갈릴리에서 성장하였고, 사역의 중심지도 예루살렘이 아닌 사마리아와 주변 지역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모이는 중심지가 아닌 예수님이 계신 곳을 '중심'으로 만드셨습니다. 예수님이 계신 '여기'가 바로 하나님 역사의 중심부가 됩니다.

 

3. 하나님은 환경이 아니라 삶으로 영광 받습니다.

예수님은 비천한 환경에서 태어났고 성장했지만 그런 환경과 싸운 적은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환경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의 복음으로 살기 위한 몸부림뿐이었습니다. 30년을 준비하여 3년 반 동안의 짧은 공생애를 살았지만, 예수님의 삶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집중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세상을 이룬 업적을 보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보여 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은 바로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주일예배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의 교회가 위험합니다!  (0) 2018.12.30
우리의 시간이 위험합니다!  (0) 2018.12.16
우리의 구원이 위험합니다!  (0) 2018.12.09

우리의 시간이 위험합니다!

2018. 12. 16. 15:18 | Posted by 소망지기

 

2018. 12. 16. 주일 오전예배

 

베드로후서 3:8

 

 

 

시간은 누구에게나 동일한 젤대값이라고 생각하지만, 사람과 환경에 따라 느끼는 시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물리적 신간도 변한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과 같을까요? 아니면 다를까요? 다르다면 어떻게 다를까요?  질문에 대한 정답을 분명히 알아야 성경에서 말씀하는 하나님의 시간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고, 그에 따른 하나님의 뜻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1. 사람의 시간개념('크로노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언어와 개념으로 표현한 책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하나님의 나라, 거룩함, 등에 대한 시간적인 의미를 표현할 때 '시제(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개념을 사용하여 표현합니다. 시간의 흐름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런 시간개념에 익숙해져 있기에 하나님의 시간을 사람들의 시간으로 표현한것입니다.

 

2. 하나님의 시간개념('카이로스')

하나님의 시간은 사람이 가진 시간과는 다릅니다(참고, 시90:4, 계22:13). 하나님은 시간을 창조하신 분으로 시간 밖의 존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에게는 과거, 현재, 미래의 시제가 의미가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시간은 항상 현재('스스로 있는 자'= I AM WHO I AM)입니다. 미래를 의미하는 '영원'도 하나님에게는 언제나 '현재'입니다.

 

3. 우리가 기억해야 할 시간

성경속의 시간은 '하나님의 시간'을 설명하기 위해 '사람의 시간'으로 표현한 것이기에 사람의 시간개념으로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예정'은 과거가 아닌 '현재'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과 주권을 설명하고 찬양하기 위함(엡1:5-6, 9-12)이고, '영원'은 미래가 아닌 '하나님과 공유하는 현재'(요17:3)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물리적 시간을 따르는 사람의 시간('크로노스')이 아니라 '지금, 현재'를 의미하는 하나님의 시간을 살아야 합니다.

'주일예배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유에서 십자가까지  (0) 2018.12.23
우리의 구원이 위험합니다!  (0) 2018.12.09
우리의 기도가 위험합니다!  (0) 2018.12.02

우리의 구원이 위험합니다!

2018. 12. 9. 15:22 | Posted by 소망지기

 

2018. 12. 09. 주일 오전예배

 

로마서 10:5-10

 

 

 

성도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씀이 '입으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할 때 '영접기도', 세례받을 때 '고백기도', 신앙생활 시작할 때 '헌신기도' 등을 하면 구원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성경 말씀과는 무관하고 단지 자신의 만족만 위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구원의 삶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합니까?

 

1. 본문의 이해

바울은 로마 성도들에게 믿음에 관하여 설명하다가 9장부터 10장까지는 유대인들의 구원에 관해 설명합니다. 유대인들의 문제는 '올바른 지식 없는 열심'(2절)임을 말하면서 신명기 30:11-14절의 내용을 인용하며 설명합니다(6-8절). 신명기에서 모세가 말하는 핵심은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들은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아주 쉽다는 것입니다.

 

2. '입으로 시인하고 마음을 믿는다'는  의미는?

신명기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실천하기 쉬움을 표현하기 위해 사요한 개념이 '입'과 '마음'(신30:14)입니다. 성경에서 '입'과 '마음'이 함께 사용될 때는 인간의 내면('마음')과 외면('입')이 함께 드러나는 삶의 행위나 모습을 의미합니다. (참고, 시19:14, 사29:13, 겔33:31, 롬15:6, 고후6:11) 따라서 오늘 본문이 말하는 의미는 단순히 입으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믿는 바를 실천하는 구체적인 행위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3. 당신이 구원받았다는 증거는 무엇입니까?

그래서 바울이 강조하고자 한 것은 유대인들이 오해한 '올바른 지식'은 밥로 예수 그리스도임을 확인시키고, 예수를 믿ㄴ는다면 '입과 마음'으로 그 뜻을 실천해야 하며(참고, 롬5:1, 2), 그러한 삶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쉽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이것은 바울뿐만 아니라, 종교개혁자들도 한결같이 주장한 것이지만, 안타깝게도 '구원의 확신'은 강조하지만 정작 구원의 열매인 '거룩한 삶'은 소홀히 여기는 기형적인 신앙인들이 되버렸습니다.

'주일예배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의 시간이 위험합니다!  (0) 2018.12.16
우리의 기도가 위험합니다!  (0) 2018.12.02
우리의 열심이 위험합니다!  (0) 2018.11.25

우리의 기도가 위험합니다!

2018. 12. 2. 15:12 | Posted by 소망지기

 

2018. 12. 02. 주일 오전예배

 

요한복음 14:13-14

 

 

신앙생활에서 기도이 중요성에 대해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기도'라는 말을 거의 모든 종교에서 사용하다 보니 성경에서 말하는 '기도'를 오해해서 타종교나 무속인이나 우상숭배자들의 기도와 구별이 안될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열심 있는 기도의 행위가 당지 인간의 수고와 정성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마치는 이유를 아십니까?

 

1.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름'이란 '그 사람의 인품과 삶의 흔적'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라는 것은 자신의 욕심과 생각을 내려놓고 '예수님의 뜻과 의도'를 따라 기도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야만 그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영광 받기 때문입니다. 결국, 기도의 궁극적인 응답은 우리의 만족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따라서 기도자는 예수님의 마음과 생각, 그리고 말씀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그에 따른 기도를 해야 합니다.

 

2. 출 17:8-16.

르비딤에서 아말렉과 싸울 때 모세가 팔을 높이 든 것은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팡이를 높이 들어 하나님의 능력을 보게 하는 행동입니다('여호와 닛시')

 

3. 렘 33:2-3.

무조건 기도하면 응답하겠다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힌 예레미야에게 힘들더라도 계속 기도하며 전하면 반드시 그렇게 시해하겠다는 말씀입니다.

 

4. 마 7:7-12.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해결 받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기도하는 행위'보다 '기도하는 관계성'을 강조합니다. 즉,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잘 맺을 때 응답받는다는 것입니다.

'주일예배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의 구원이 위험합니다!  (0) 2018.12.09
우리의 열심이 위험합니다!  (0) 2018.11.25
우리의 신앙이 위험합니다!  (0) 2018.11.18

우리의 열심이 위험합니다!

2018. 11. 25. 15:20 | Posted by 소망지기

 

2018. 11. 25. 주일 오전예배

 

누가복음 18:9-14

 

 

 

우리나라 성도들으 특별한 '열심'으로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열정'은 충분히 칭찬받아야 하나, 잘못된 열심은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거나 하나님으로부터 책망받게 합니다.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를 통해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의미를 생각해 보고, 우리가 가진 '열심'은 어떤 모습인지를 각자 점검해 봅시다.

 

1. 잘못된 열심은 자기의 의를 드러냅니다.

예수님 당시에 열심있는 신앙으로 인정받는 사람인 바리새인의 기도 중심에는 "나..."(11, 12절)이라는 자아와, 금식과 십일조를 통해 자신의 열심이쓴ㄴ 시앙생활을 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바른 신앙이란 단지 종교적인 행위만을 열심히 하는 것은 아님을 말합니다. 오히려 시낭 행위를 통해 자아가 변화되어 자신 삶을 통해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임을 말합니다.

 

2. 잘못된 열심은 다른 사람을 판단합니다.

바리새인의 첫마디는 자신의 신앙을 세리와 비교하면서 우월감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열심히 신앙생활해야 하는 이유가 남들보다, 불신자들보다 '더 나은 모습'(Life-better than)이 아니라 '그렇게 사는 것'(Lfe-only)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열심으로 인해 더욱 겸손해지고 낮아져서 예수님의 삶을 닮는 것이 열매가 되어야 합니다.

 

3. 잘못된 열심은 자신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세리는 로마정부를 위해 세금을 걷는 사람들로 당시에는 매국노로 손가락질당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처지를 고백하고 회개하는 비유를 든 것은 반어적으로 하나님을 잘 믿는 다고 하는 바리새인들은 자신을 보지 못함을 지적합니다. '잘못된 열심은 다른 사람이 보이고, 바른 열심은 자신이 보인다'는 것을 말슴하십니다. 열심으로 외적인 열매를 찾기보다는 내적 통찰을 통해 내면의 성숙을 추구해야 합니다.

'주일예배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의 기도가 위험합니다!  (0) 2018.12.02
우리의 신앙이 위험합니다!  (0) 2018.11.18
우리의 감사가 위험합니다!  (0) 2018.11.11

우리의 신앙이 위험합니다!

2018. 11. 18. 13:23 | Posted by 소망지기

 

2018. 11. 18. 주일 오전예배

 

누가복음 14:25-35

 

 

예수님은 자신이 명성을 듣고 따르는 수많은 무리를 향하여 참된 신앙의 모습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동일하게 오늘날에도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는 에게 참된 신앙의 모습은 어떠해야 함을 말씀합니다. 단순히 을 믿고, 믿음을 위해 교회생활하는 것이 신앙생활의 전부는 아닙니다. 바른 신앙을 음 질문에 답해보세요

 

1. 무엇을 따르는가?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목적은 예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었습니다. 이에 "네게 오는 자(26절)", "나를 따르는(27절)", "내 제자(26, 27, 33절)"라 말씀하십니다. 이는 신앙이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함이 아니라, 예수님이 목적이고, 예수님의 삶을 따라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수의 '익명성'에 숨어 자기생각 속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목적이 되는 생활입니다.

 

2. 따를 준비가 되었는가?

예수님을 목적으로 하는 신앙에는 준비가 필요합니다. 26절 말씀은 오해하기 쉬운데, 자기 가족을 외며나라는 의미가 아니라, 더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마10:34-38). 27절의 "자기 십자가를 지고"란 자신의 어떤 어려운 형편이나 문제가지도 핑계나 이유가 될 수 없다는 겁니다. 즉, 모든 상황을 감수하고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3. 대가는 지불하고 있는가?

구원에는 대가가 필요없지만, 신앙생활에는 반드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망대건축의 비유를 통해서 신앙의 의미를 자세히 살펴서 중도에 포기하는 일이 없어야 함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전쟁비유를 통해 힘이 강한 하나님과 빨리 화친을 맺어 멸망을 피하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앙을 위해 철저히 '계산'해서 중도에 포기하지 않도록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고, 부족함이 있다면 빨리 하나님께 은혜와 긍휼을 구해야 합니다.

'주일예배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의 열심이 위험합니다!  (0) 2018.11.25
우리의 감사가 위험합니다!  (0) 2018.11.11
당신의 순종이 위험합니다!  (0) 2018.11.04

우리의 감사가 위험합니다!

2018. 11. 11. 15:17 | Posted by 소망지기

 

2018. 11. 11. 주일 오전예배

 

요한계시록 14:14-16

 

 

 

일반적인 추수감사절은 미국의 청교도들로부터 유래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념하는 추수감사절은 <초막절>로서 유대인들이 반드시 예루사렘 성전에서 지켜야 하는 유월절, 오순절과 함께 3대 절기에 해당합니다. 유대 달력으로 7월 15일부터 7일 동안 '초막'을 짓고 생활하는 이 절기에는 단순히 풍성한 추수에 대한 감사 이상의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1. 7월의 초막절(레 23:24-28)

초막절이 있는 8월은 유대인들에게 특별한 한 달입니다. 7월 1일은 <나팔절>로 온 땅에 나팔을 불어 경고합니다. 7월 10일은 <대속죄일>로 유대인의 절기 중에 가장 엄숙한 절기로서 회대와 속죄로 하루를 보냅니다. 그리고서 7월 15일에 <초막절>을 지키게 됩니다. 초막절의 준비로 '풍성한 예물'뿐만 아니라, 온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죄를 고백하고 회개함으로써 하나님의 용서와 정결케 하심에 대한 감사로 초막절을 지킵니다.

 

2. 초막에 거주하는 이유(레 23:39-43)

한 해의 농사를 다 마친 후, 수확물로 예물을 드리고 초막을 짓고 7일 동안 생활하는 이유는 과거로부터 이어지고 있는 하나님의 구원과 인도하심을 생생히 기억 위함입니다. 지금의 풍성한 삶에 대한 감사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어렵고 힘든 환경 속에서도 여전히 은혜로 역사하는 하나님의 손길에 대한 감사의 고백을 드리는 것입니다.

 

3. 마지막 추수(계 14:14-16)

초막절은 궁극적으로 예수님으로 이루어지는 마지막 추수를 상징합니다. 계 8:6부터 11:15까지 일곱 천사가 나팔을 불어 거룩한 삶을 경고하고, 이어서 14장에 예수님이 낫을 가지고 익은 곡식을 추수합니다. 결국, 초막절이 의미하는 추수 후의 '초막'은 하나님의 경고의 나팔소리에 철저히 회개함으로 누릴 수 있는 영원한 하나님나라의 상징입니다. 우리의 기쁨과 감사는 이러한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에 대한 행복한 고백입니다.

'주일예배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의 신앙이 위험합니다!  (0) 2018.11.18
당신의 순종이 위험합니다!  (0) 2018.11.04
예수님을 갈망합니다  (0) 2018.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