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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김포시 양촌읍 김포한강4로 278번길 7-15(석모리 882-2) 교회 031-996-9100 목사님 010-2500-2004 e-mail : jaekimpst@gmail.com 선교후원 : 농협 301-0068-481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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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순종이 위험합니다!

2018. 11. 4. 15:23 | Posted by 소망지기

 

2018. 11. 04. 주일 오전예배

 

신명기 28:46-48

 

 

신명기 28장은 신명기의 결론 부분으로 1-14절까지는 '복'에 대하여, 15-68절까지는 '저주'에 관하여 말씀합니다. 복과 저주를 결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조건적이고 철저한 순종이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하는 것일까요? 성경은 단순한 순종이 아니라,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길 것'을 말씀합니다.

 

1.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

46절에서 모든 저주는 '표징(히:'오트' = 표적(sign))'과 '훈계(히:'모페트'(이적, 기적(wonder)))'이라고 합니다. 이는 저주뿐만 아니라 복까지도 하나님이 주시는 표적과 기사에 지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율법에 맹목적으로 순종하기를 바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47절) 순종하길 바라십니다.

 

2. 율법의 기능

로마서 7장에는 율법과의 관계를 '부부관계'로 설명합니다(2절). 그 이유는 율법을 통해 하나님과 '아름다운 연합'을 이루기 위합입니다. 율법 자체에는 문제가 없습니다(롬7:7, 12절). 율법은 단순히 '순종의 관계'가 아니라, 친밀하고 '연합된 관계'를 이루는 용도도 주신 것인데 사람들이 그 의미를 모르고 순종만 하려고 애쓰다가 결국은 죄에 넘어지고만 것입니다. 율법으로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친밀한 관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3. 율법의 궁극적인 목적

율법의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십일조'입니다. 하나님이 십일조를 말씀하신 것은 무조건적으로 십일조를 바치라는 의미가 아니라, 십일조를 통해 하나님이 바라시는 공의와 정의를 우리의 삶에서 이루라는 의미입니다(참고, 마23:23). 그래서 말라기 3장에서 말씀하는 십일조는 철저한 순종의 십일조가 아니라, 십일조를 통해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기쁨과 즐거움의 십일조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삶에 이런 기쁨과 즐거움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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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갈망합니다

2018. 10. 28. 15:10 | Posted by 소망지기

 

2018. 10. 28. 주일 오전예배

 

마태복음 5:6

 

 

 

'산상수훈'은 기독교의 대헌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신앙의 핵심내용들을 담고 있습니다. 이런 산상수훈의 시작을 알리는 '팔복'은 진정한 복이 무엇인지 말씀합니다. 그중에 네번째인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에 대한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필요한 복이 무엇이며,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복된 삶인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의'란 무엇입니까?

'의'란 히브리어로 '짜다크'로 '옳다' '바르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에서 통용되는 '의'의 개념은 바른 행위나 정의로운 행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말합니다. 율법으로 이루지 못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하나님이 친히 인간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의(바른 관계)를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의 '의'가 됩니다.

 

2. '주리고 목마른 자'란?

영적인 상태를 일상에서 쉽게 경험하는 육체의 상태로 표현하는 비유입니다. 의로운 삶에 대한 간절함과 사무함이 있어야 함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 정도가 단순한 수준을 넘어 허기진 사람이 먹을 것을 찾고, 갈증에 시달리는 사람이 마실 것을 찾을 정도로 적극적이고 실제적이어야 함을 말합니다. 모세가 그러했고(출33:13), 시편이 노래하는 것처럼(시42:1)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의 의가 되신 예수님을 갈망하며 찾는 것입니다.

 

3. 무엇이 '복'입니까?

완전한 의인이 되는 것이 복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선한 행위로는 누구도 하나님 앞에 의인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이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의가 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라고 '여겨질'뿐입니다. 그래서 성도드리 해야 할 일은 선한 행위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간절히 사모하며 갈망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갈망하는 것이 바로 복입니다. 갈망하는 자는 반드시 '배부름'을 맛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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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산다는 것

2018. 10. 21. 13:19 | Posted by 소망지기

 

2018. 10. 21. 주일 오전예배

 

히브리서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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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샅바를 잡아라

2018. 10. 14. 15:09 | Posted by 소망지기

 

2018. 10. 14. 주일 오전예배

 

창세기 32:22-30

 

 

 

야곱의 생애의 변곡점은 바로 얍복강에서 하나님과 씨름함으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는 순간입니다. 20년 전에 아버지 이삭을 속여 형 에서의 축복기도를 빼앗고 도망간 후, 다시 형 에서와의 만남의 순간을 앞두고 얍복강에서 하나님과 씨름하는 야곱의 모습은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어떤 도전을 줄까요? 야곱의 생애를 크게 나누어보면....

 

1. 얍복강까지

25장 야곱의 출생부터 그 이름처럼('속이는 자'), 형 에서의 장자권과 아버지를 속여 축복기도를 빼앗고, 자신이 좋아하는 라헬을 아내로 얻기 위해 14년을 종처럼 일하고, 자신의 재산을 위해 6년을 일하는 등, 야곱은 철저하게 자신의 성공과 야망을 위해 산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믿었지만, 그 목적은 자신의 안녕과 형통에 있었습니다(창2:9-12).

 

2. 얍복강에서

얍복강(히: '야보크'=비우다, 흘려보내다)에서 어떤 사람과 씨름(히: '아바크'=먼지, 티끌)합니다. 먼지를 뒤집어 쓸 정도로 처절하게 싸운 이후에 그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뀝니다. 이 이름의 의미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라고 설명합니다. 강가에서 싸운 사람은 바로 하나님입니다(30절). 그렇다면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3. 얍복강을 지나

얍복강 사건을 지난 후 33장 이후 야곱의 삶을 보면 슬픔과 고난의 역사를 점철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죽고, 사랑하는 막내 요셉을 잃어버리고, 결국은 기근으로 애굽으로 가는 형편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야망과 성공을 좆는 야곱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살피고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가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욕망을 비우기('야보크')위해 하나님과 먼지 나도록 씨름('아바크')해서 결국 하나님이 축복('바라크')을 누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씨름은 이제 우리의 몫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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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됨

2018. 10. 7. 15:18 | Posted by 소망지기

 

2018. 10. 07. 주일 오전예배

 

요한복음 17: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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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누구입니까?

2018. 9. 30. 15:06 | Posted by 소망지기

 

2018. 09. 30. 주일 오전예배

 

에베소서 2:14-15

 

 

에베소교회는 예루살렘교회와 안디옥교회와 함께 바울의 사역에 주심적인 영할을 한 교회입니다. 로마감옥에 갇힌 바울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를 통해 큰 부흥으로 소문난 교회(참고, 엡1:15)에 편지하는 목적은 무엇일까요? 믿음 생활은 단순히 교회 안에서 열심히, 성실히 생활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신앙인의 모습은...

 

1. 그리스도의 사람(Christ Man; 2:10)

1:3-2:10절까지 신앙의 근본을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이는 믿음 생활의 목적과 의미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임을 분명히 합니다. 우리의 목적과 의도가 아닌, 전적인 예수님의 뜻 안에서 살아가는 삶이 되어야 함을 말합니다.

 

2. 한 새 사람(One New-Man; 2:15)

믿음의 모습을 2:11절 이하부터 이방인과 유대인이 하나가 되어 새로운 존재로서 하난님과 화평한  관계를 맺는 사람으로 설명합니다. 이는 유대인도 아니고. 이방인도아닌,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의미합니다.

 

3. 새 사람(New Man; 4:24)

3장부터 6:9절까지 복음으로 변화된 '새 사람'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이 '새 사람'은 영적인 변화뿐만 아니라, 이웃과 지체의식을 가지고, 말이 달라지고(4:25, 29, 5:4), 감정표현이 달라지고(4:26, 31), 삶이 달라지는(4:28, 5:3, 5) 변화를 경험합니다.

 

4. 영적 사람(Spiritual Man; 6:11)

6:10절 이하에서는 마귀를 대항하는 전신갑주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를 이해해야 합니다. 앞으로 마귀는 더욱 교묘한 방법으로 성도들을 미혹하고 믿음의 방해를 더 치밀하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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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과 본향

2018. 9. 23. 13:15 | Posted by 소망지기

 

2018. 09. 23. 주일 오전예배

 

히브리서 11:13-16

 

 

올 추석에도 많은 사람이 고향을 찾아 귀성길에 오르고 있습니다. 명절이 되면 고향을 찾는 사람들로 고속도로가 가득해지는 것을 보면 그만큼 고향을 떠나 객지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런 명절에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중요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명절을 맞이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신앙적 교훈을 되새겨 봅시다.

 

1. 외국인과 나그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으로 산 사람들의 삶과 신앙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8절부터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의 삶을 소개해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믿음의 삶을 사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13절에서 외국인과 나그네로 설명합니다. 이는 이 세상을 목적으로 하고 이 땅에 정착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잠시 머물다가 떠날 사람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도 이 땅에 잠시 지나가는 나그네에 불과합니다.

 

2. 고향과 본향.

사람에게는 태어난 고향이 있는데 이것을 15절에서 나온 바 본향이라고 합니다. 이런 고향은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고향이 있습니다. 16절에 더 나은 본향이라고 하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더 구체적으로는 하늘의 본향입니다. 우리는 육신의 고향보다 더 나은 믿음의 본향을 찾아가는 삶이 돼야 합니다.

 

3. 명절과 절기

성경에는 나그네의 삶을 사는 믿음의 사람들이 더 나은 본향을 찾는 삶을 훈련하기 위해 만든 특별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절기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여호와의 절기라고 합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유대인의 명절로 변질되어 본향을 찾는 것이 아니라, 사람중심의 명절이 되고 말았습니다. 절기를 통해 하나님을 찾는 삶이 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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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재 속에 임재 안에 살기

2018. 9. 16. 13:41 | Posted by 소망지기

 

2018. 09. 16. 주일 오전예배

에스더 2:5-7

 

 

교회와 목회자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오늘날의 상황에서, 에스더는 건강한 신앙생활을 위한 특별한 메시지를 줍니다. 바벨론으로 유배당한지 100년,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여 성전을 건추간지 30년이 넘도록, 여전히 유배지에 남아 있으면서 신앙적인 환경의 열악함에도 신실한 믿음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성전 같은 신앙의 중심적 요소가 없더라고 하나님의 임재 속에 살 수 있었던 비결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1. 말씀의 능력(에2:5-7).

6절은 에스더의 사촌인 모르드개가 포로로 잡혀 왔다는 뜻이 아니라, 100년 전 포로로 잡혀 온 조상과 동일한 신앙을 이어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런 신앙의 소유자가 고아가 된 에스더를 딸처럼 양욱했다는 것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말씀'으로 양육했다는 의미입니다. 지역에 있는 교회는 신앙의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도록 양육하고 훈련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교회생활이 안라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살아야 합니다.

 

2. 거룩의 능력(에3:1-4).

모르드개가 최고위 관리인 하만에게 절하지 않는 것은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신앙의 영역임을 분명히 말해줍니다(참고, 3:6, 8절). 거룩이란 '구별' '분리' '차별'의 의미입니다. 신앙적인 열심인 이유는 믿음으로 구별되고 차별화된 삶을 살기 위한 열정에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의 삶은 '거룩함'의 현장이 되어야 합니다.

 

3. 기도의 능력(에4:16-17).

에스더는 자신의 유익을 위한기도가 아니라, 자신이 민족을 살리는 도구로 사용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혼자만의 기도가 아니라 여러사람이 함께하는 기도의 능력을 알고 있습니다. 에스더가 기도의 능력을 잘 알기에 담대하게 헌신과 순종의삶을 살았듯이, 우리도 기도를 통해 자신을 하나님의 도구로 내어드리는 헌신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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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을 보면 내가 보인다

2018. 9. 9. 15:18 | Posted by 소망지기

 

2018. 09. 09. 주일 오전예배

사무엘상 14:31-35

 

 

지난주에는 다윗을 통하여 하나님은 어떤 분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사울 왕을 통해서 하나님이 원하는 신앙의 모습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초대왕으로서 하나니의 은혜와 은사를 경험한 사람입니다(삼상10:6-10). 그리고 암몬의 군대를 이긴 능력을 갖춘 사람입니다(참고, 삼상11장). 그런데 하나님은 이러한 사울을 버렸습니다. 왜 버림받게 되었을까요? 사울을 통해 우리의 신앙을 점검해 봅시다.


1. 신앙이 우상이 되버렸습니다.
13~14장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보여지는 사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울은 위기의 상황에서 흩어지는 군인들을 붙잡기 위해 번제를 드리고(삼상13:8-9), 전쟁하기 위해 '하나님의 궤'를 가져오게 하고(삼상 4:18), 밤중에 블레셋을 추격하기 위해 제단을 쌓습니다(삼상14:35).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자신의 목적과 유익을 위한 도루고 전락했습니다.


2. 자기목적을 위해 백성들을 이용합니다.
전쟁에 속히 이기기 위해 백성들에게 아무것도 먹지 못하게 합니다(삼상14:24).그래서 굶주린 백성들을 짐승을 피째로 먹는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32절). 그러자 큰 돌을 가져다가 거기에 구워 먹게 하고(33절) 제단을 쌓습니다. 그 이유는 그날 밤에 블레셋을 추격하고 승리를 얻기 위함입니다(36절). 백성들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입니다.


3. 자신을 돌아보지 못합니다.
추격에 나서는 사울에게 제사장은 먼저 하나님께 물어보라고 합니다(36절). 그러나 하나님의 대답이 없자 그 이유를 다른 사람에게서 찾습니다. 아들 요나단이 선택되지만 백성들이 나서섯 요나단을 변호하여 구원합니다(45절). 이 상황은 모든 문제의 실마리가 사울에게 있음에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주변 사람에게서 찾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허물을 회대할 필요성도 깨닫지 못하다가 버림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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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해도 행복합니다

2018. 9. 2. 15:21 | Posted by 소망지기

 

2018. 09. 02. 주일 오전예배

사무엘상 30:21-25

 


 본문 : 사무엘상 30:21-25 

제목 : 부족해도 행복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죽어서 가는 천국도 아니고, 문제를 해결해 주는 신기한 능력도 아니라, 오직 하나님 그 자체입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개입하셔서 그분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인도하십니다. 그러기에 이런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성품과 성향이 나타나야 합니다. 다윗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은 어떤 모습일까요? 이를 통해 우리가 보여 줄 삶의 모습은?


1. 세워주시는 하나님.

다윗은 사울 왕을 피해 도망다니는 상황이고, 그를 따르는 무리도 형편이 없고(삼상22: 1-2), 그들이 살던 시글락이나 피곤에 지친 브솔시내나 다 소망이 없는 곳입니다. 그러나 이런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은 희망으로 역사하셔서 장차 위대한 다윗 왕국으로 세워나가고 계십니다. 그래서 성도는 낙심과 절망이 아닌 소망과 희망을 안고 살아야 합니다.


2. 안아주시는 하나님.

아말렉 사람들에게 가족이 납치되어 구출하러 가는 길에 브솔 시냇가에서 피곤함에 200명이 추격을 포기합니다. 그러나 나머지 400명은 끝까지 쫓아가서 가족을 모두 구출해 왔을 때 남아있던 200명은 어떤 대가를 치러야 했을까요? 다윗은 비난받기에 합당한 그들에게도 동일한 권리를 부여합니다. 부족하고 연약하기에 더 품고 긍휼을 베푸십니다.


3. 베풀어주시는 하나님.

피곤함에 브솔시내에 머물렀던 자들을 향해 소유물 곁에 머물렀던 자’(24)로 묘사합니다. 이 의미는 남아서 소유물을 지키던 자’(표준새번역, 메시지성경)입니다. 자신의 안위를 먼저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도 거룩한 임무를 맡은 자로 여겨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잘나지도, 능력 없어도, 오히려 부족해도 하나님의 사랑에는 변함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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