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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김포시 양촌읍 김포한강4로 278번길 7-15(석모리 882-2) 교회 031-996-9100 목사님 010-2500-2004 e-mail : jaekimpst@gmail.com 선교후원 : 농협 301-0068-481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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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로 흙을 밟고

2019. 3. 24. 15:04 | Posted by 소망지기

 

2019. 03. 24. 주일 오전예배

열왕기하 5:15-19


 

북이스라엘을 가장 많이 괴롭히던 아람의 군대 장관인 나아만이 나병이 들었을 때 앨리사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고쳐주었습니다. 신앙에서는 문제를 해결 받는 과정도 중요하고 의미 있지만 정작 해결 받은 삶이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통해 믿음으로 살아가기로 결단한 사람에게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야 하는지 묵상해 봅시다.

1. 가치관의 변화(15-16절).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한 나아만은 다시 앨리사에게 와서 믿음을 고백하고 예물을 드리려합니다. 그러나 앨리사는 정중히 거절하는(16절) 반면에 사환인 게하시는 당당히 요구합니다(22절). 이런 차이는 가치관의 차이입니다. 게하시는 물질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엘리사는 물질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거짓된 가치관을 가진 게하시를 심판하십니다. 지금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2. 세계관의 변화(17절).
나아만이 이스라엘의 흙을 싣고 가겠다고 하는 이유는 비록 자신이 아람에서 살아가지만, 이스라엘 땅의 흙을 밟고 하나님을 예배함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겠다는 의지의 고백입니다. 나아만은 하나님은 이스라엘에만 계신 분이 아니라 온 땅에 계시기에 자기삶의 현장이 곧 하나님 나라임을 고백하고 예배하겠다는 세계관의 변화를 보여 줍니다.

3. 인생관의 변화(18절).
아람으로 돌아가면 여전히 자신은 일상적으로 감당해야 할 일을 수행하겠지만 이제는 하나님만을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주어진 직무를 감당하겠다는 고백을 합니다. 신앙이란 세상을 떠나 종교적 행위에만 열심을 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회적 직무를 충실히 감당하지만, 그 목적과 의미를 하나님 안에서 찾는 새로운 인생관으로 바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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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이 무너진 이유

2019. 3. 17. 15:17 | Posted by 소망지기

 

2019. 03. 17. 주일 오전예배

마태복음 23:13-15


 

하나님이 그 시대의 영적상태를 판단하는 '영적지표'가 있는데 바로 신앙지도자들입니다. 그들의 영적 상태가 그 시대의 신앙 상태를 반영하기에 예수님도 당시의 신앙의 지도자들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신앙행태에 대해 신랄한 비판과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합니다(마23:36, 38). 예수님이 세우시려는 바른 신앙의 모습은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1. 세속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의 신앙으로.
마 23장을 보면 바른 신앙으로 인도해야 할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보이는 행태는 세상의 모습과 다를 바 없습니다. 행함이 없고(3-4절), 자기를 앞세우고(5-10절), 물질적이며(16-23절), 외식적이며(25-28절), 자기 과시적인(29-30절)모습을 고발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원하시는 신앙의 모습은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깨닫고 그 뜻에 따라 살아가는 신앙의 삶입니다.

2. 종교생활에서 자아회복으로.
당시 지도자들이 강조한 것은 종교적 헌신과 열심입니다. 그래서 개인의 삶은 희생시키고 오로지 하나님께만 열심인 삶이 좋은 신앙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의미의 자아회복과 계발, 그리고 자기성장을 이루기 원하십니다. 삶의 진정한 의미와 가장 가치있게 살 수 있는 길이 신앙 안에 있음을 깨닫기 바랍니다.

3. 자기성취에서 자기성숙으로.
당시 지도자들이 추구했던 것이 '랍비' '아버지' '지도자'와 같은 호칭으로 불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존재로 만족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랑받는' 존재가 아니라 '사랑하고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신앙은 자기 뜻을 이루는 '자기성취'가 아니라, 섬기기 위해 자신을 낮추는 '자기성숙'의 삶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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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하나님을 죽여라

2019. 3. 10. 15:14 | Posted by 소망지기

 

2019. 03. 10. 주일 오전예배

에스겔 11:14-20


 

사람의 입맛은 잘 바뀌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요리든 자신의 입맛에 맞게 양념을 쳐서 먹을 때야 맛있다고 느낍니다. 신앙생활에서도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을 믿기보다는 자신이 '믿고 싶고' 원하는 '하나님'을 믿는 경향이 많습니다. 결국, 자신이 믿는 하나님은 성경의 하나님과 상관없는 '우상'입니다. 이런 하나님은 단호히 죽여버려야 합니다.

1. 철학자 니체(1844~1900)가 "신은 죽었다"고 말해야 할 이유.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신학을 공부하던 니체는 신학을 포기하고 철학을 공부합니다. 그리고 당시 독일과 유럽의 정신을 지배하던 전통적인 신학과 신관에 대항합니다. 무조건적인 믿음을 강요당하여 자주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를 포기한 사람들을 향해 '당신들이 믿는 그런 하나님은 죽고 없어졌다. 그런 하나님에게서 벗어나라'고 외쳤습니다. 니체는 결코 허무주의나 무신론주의가 아니라 참된 인간성의 회복을 외쳤습니다.

2. 당신이 믿는 하나님이 가짜일 수도 있다.
에스겔(B.C. 592)이 환상 중에 본 예루살렘 성전의 모습은 우상으로 가득합니다(겔 8:3-16). 그러나 정작 그들은 자신이 믿는 하나님이 우상임을 모르고 아전인수격으로 현실을 해석합니다(3절, 15절). 이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여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B.C. 586). 이는 하나님이 친히 '가짜 하나님'을 죽여버린 결과입니다.

3.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가 믿어야 할 '살아계신 하나님'은 장소나 형식에 매여있는 분이 아니라 그 자신이 성소가 되십니다(16절). 그리고 환난을 통하여('그리고 가서') 우리를 새롭게 하여('제거하여') 새 사람을 만들어('한 마음과 새 영')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는 분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현실의 상황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삶으로 바꾸시는 분입니다. 결국 신양의 목적은 하나님 한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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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누리는 천국과 지옥

2019. 3. 3. 15:24 | Posted by 소망지기

 

2019. 03. 03. 주일 오전예배

마태복음 20:1-16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크게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지배하심 속에 있는 '천국'과 그렇지 못한 '지옥'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신앙인들의 목표는 천국을 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천국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말씀하는데 '집 주인'과 같다고 합니다. 포도원 '집 주인'을 통해 이 땅에서 천국을 사는 모습과 그렇지 못한 지옥의 모습은 어떠한지 살펴봅시다.

1. 천국은 '은혜로운 곳'입니다.

'품꾼'이란 일정한 직장 없이 그날 일하는 사람입니다. 집주인으로서는 품꾼을 고용하여 그날의 삯을 주는 것은 일거리가 없던 품꾼들에게 베푼 특별한 '은혜'입니다. 그런데 품꾼들에게 임한 이 '은혜'가 다른 시간에 와서 일한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참고, 11-12절). 천국은 하나님의 은혜가 '은혜'로 여겨지는 곳이지만, 지옥은 하나님의 은혜보다는 자신의 원함이나 욕심을 채우기에 급급한 곳입니다,

2. 천국은 '사랑하는 곳'입니다.

'집주인'이 보여주는 행위는 일거리가 없는 품꾼들을 불쌍히 여겨 일거리를 주고, 그들에게 약속한 일당을 공평하게 지급하는 '사랑하는' 행동입니다. 천국이 '집주인'과 같다는 것은 이러한 '사랑하는' 행위가 있는 곳이란 의미입니다. 오늘날은 '사랑받기' 위해 수고하고 애쓰는 세상이 돼버렸습니다. 그러나 천국은 '사랑하는 곳'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3. 천국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집주인'의 뜻은 두가지로 나타납니다. 우선은 각 시간에 인력시장에 나가 품꾼을 고용하는 것입니다. 일거리를 찾지 못한 품꾼들은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기다리다가 집주인의 뜻에 순종하여 포도원에서 일하였습니다. 두번째는 일당을 줄 때 '나중 온 자부터'주었습니다. 이것이 일찍부터 와서 일한 사람들에게는 불평의 이유가 돼버렸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이 주인의 뜻이듯, 천국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기

2019. 2. 24. 15:20 | Posted by 소망지기

 

2019. 02.24. 주일 오전예배

다니엘 6:19-23


 

다니엘서는 유대인의 성경('타나크')에서는 예언서가 아니라 성문서로서 역사서로 분류됩니다. 이는 예언적인 의미보다는 '사건적' 의미가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다니엘서를 미래적인 예언(7장-12장)의 의미를 강조하기보다는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의 신앙의 모습이 어떠해야 함(1장-6장)에 더 많은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어두웠던 시대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았던 다니엘을 통해 도전받아야 할 신앙은?

 

1. 믿음이란 능력이 아니라 태도입니다.

다니엘이 보여주는 믿음의 모습은 자신의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문제 앞에 믿음의 올바른 태도와 자세를 가지고 있을 때 '하나님의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원하는 것은 능력으로 이루는 성공이나 형통한 모습이 아니라,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신앙의 태도입니다.

 

2. 믿음이란 타협이 아닌 용기입니다.

우기 앞에서 필요한 '용기'란 위험을 감수하는 굳건한 정신력이 아니라, 상황과는 상관없이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는 헌신의 마음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 더 많은 제물과 희생을 드림으로 기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정작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우리 자신입니다(롬12:1). 진정한 용기란 하나님께 자신을 기꺼이 내어드리는 헌신입니다.

 

3. 믿음이란 결과가 아닌 과정입니다.

세상은 '결과'로서 모든 '과정'을 평가합니다. 그래서 좋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합니다. 그러나 신앙은 결과보다도 그 과정이 더 중요히 여깁니다. 합당한 과정이 있어야 올바른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과정은 자신의 기대와는 다른 모습일 수 있고 또한 시간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빠른 결과나 원하는 결과만을 기대하기 보다는 바른 과정을 통과하는 여유와 인내가 필요합니다.

 

2019. 02.17. 주일 오전예배

 

여호수아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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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배우고 거하라

2019. 2. 10. 15:16 | Posted by 소망지기

 

2019. 02.10. 주일 오전예배

 

디모데후서 3:14-17


 

에베소 교회의 목회자인 디모데에게 선배 목회자로서 바울은 마지막 때에 일어나는 여러가지 불신앙적인 상황(1-9절)과 박해(10-13절) 속에서도 믿음의 길을 걷는 방법에 관하여 권면합니다. 미혹과 불신앙의 시대를 믿음으로 살아가는 방법은 바로 성경 말씀으로 무장하는 것입니다(14절).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성경을 배우고 해석하고 적용함으로 우리의 믿음을 굳건하게 지켜나갈 수 있습니다. 성경이 가진 능력은...

 

1.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습니다(15절).

성경은 구원의 길을 알려주는 지도책과 같습니다. 성경을 통해 지질학, 천체물릭학, 성공학 등을 연구하는 책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영혼과 삶의 구원의 길을 배우는 책입니다. 성경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네비게이션과 같은 기능을 하기에 말씀에 따라 순종하며 사는 것이 세상에 보여 줄 우리의 신앙 모습입니다.

 

2.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것입니다(16절).

'하나님의 감동'이란 단어는 '데오프뉴스토스'('데오스'(하나님) + '프네오'(숨쉬다))라는 단어인데 그 의미는 '하나님의 호흡'으로 성령을 의미합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성령이 특별한 지도자에게 임하여 이스라엘을 지도하도록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서령으로 기록된 성경을 통해 우리를 가르치도록 하셨기에 우리는 성경을 배우고 순종해야 합니다.

 

3.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줍니다(17절).

'선한 일'이란 윤리 도덕적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이러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소유해야 합니다(참고, 엡6:11).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안의 견고한 진, 모든 이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 모든 생각을 무너뜨리는 능력이 있습니다(참고, 고후10:4-5). 따라서 믿음을 행함으로 세상에 보이기 위해서는 말씀을 배우고 거하게 무장하고 이 말씀을 전파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딤후4:2-5).

내 믿음을 성도에게 보이리라

2019. 2. 3. 14:34 | Posted by 소망지기

 

2019. 02.03. 주일 오전예배

 

사도행전 3:1-10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기도하러 갔는데 그곳에는 기도하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항상 성전 미문에 앉아서 구걸하던 장애인이 그날따라 일행의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물질적인 도움만을 기대하는 그에게 다가가서 그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예수님을 증거하였고, 그 결과 일회적인 물질적 도움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값진 결과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은 교회를 중심으로 신앙생활하는 우리에게 어떤 도전을 줍니까?

 

1. 밥보다는 복음입니다('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가장 아름다운 문('미문') 앞에 가장 추한 사람이 앉아서 구걸합니다. 동정심을 이용하여 자신의 필요를 채우려는 사람이기에 물질적 도움을 주는 것이 최선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지금 당장의 필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지금 당장의 필요를 위한 해결책이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오직 예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2. 입과 근육을 함께 사용합시다('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걸인의 상태는 쉽게 손을 댈 수 없는 불결한 상태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말로만으로 선포할 수도 있었겠지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라고 말한 다음에 장애인이 오른손을 잡아 일으킵니다. 이제는 입만이 아니라 사랑과 배려가 담긴 몸을 사용하여 함께 힘을 합칠 때입니다.

 

3. 함께 성전 문지방을 넘읍시다('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건강을 회복한 걸인은 한번도 시도해 볼 생각조차 못했던 성전의 '문지방을 넘어' 찬송하며 안으로 들어갑니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모든 은혜의 목적은 단순히 문제해결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합입니다(예, 요4장 사마리아여인, 요5장 38년된 병자, 요6장 오병이어, 요7장 초막절 끝, 등). 따라서 매일 성전에 가는 행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전 안에 들어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믿음이 훨씬더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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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믿음을 세상에 보이리라

2019. 1. 27. 15:16 | Posted by 소망지기

 

2019. 01. 27. 주일 오전예배

 

마태복음 22:41-46


 

행함으로 우리의 믿음을 세상에 보여 준다는 것은 세상으로부터 칭찬받는 행동을 해야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22장에 있는 4가지 대화를 통해 현시대 속에서 어떻게 우리의 믿음을 세상에 보여 줄 수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1. 정치, 경제문제 앞에서 우리의 자세(15-22절)

바리새인과 당시 정치적 주류였던 헤롯 당원들이 연합하여 세금문제를 제기합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세속적인 정치 경제적인 이슈를 하나님과의 관계로 연결합니다. 즉, 세상문제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되돌아보고 점검하는 기회를 삼아야 합니다.

 

2. 전통 앞에서의 우리의 자세(23-33절)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이 부활을 전제하는 전통적인 '계대결혼'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이는 다분히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릴 목적입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합은 성경을 인간중심으로 해성하지 말고 하나님 중심으로 해석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3. 사회문제 앞에서의 우리의 자세(35-40절)

율법사가 '가장 큰 계명'에 대한 질문을 합니다. 이는 율법적인 행위를 강조하는 당시의 사회적 문제를 제기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말씀하심으로 사회문제를 하나님과의 관계 무제로 바꾸셨습니다.

 

4. 종교문제 앞에서의 우리의 자세(41-46절)

예수님은 그리스도에 대해 질문합니다. 다윗의 자손이라는 대답은 당시 로마로부터 독림을 갈망하는 상황에서는 상식적인 대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정치적, 종교적 문제를 하나님 중심으로 바꾸어 버리십니다. 결국, 세상에 보여 줄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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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믿음을 직장에서 보이리라

2019. 1. 20. 14:47 | Posted by 소망지기

 

2019. 01. 20. 주일 오전예배

 

에베소서 6:5-9



 

신앙생활에서 가장 갈등을 많이 격는 곳이 직장입니다. 더구나 믿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믿음 생활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직장생활도 우리의 믿음을 드러내야 하는 신앙의 영역입니다. 어떻게 우리의 믿음을 직장에서 드러낼 수 있을까요?

 

1. '두려워하고 떨며'(5절)

이 말은 바울이 자주 사용한 표현입니다(고전2:3, 고후7:15, 빌2:12). 바울이 이런 말을 할 때는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할 때 사용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에게 직장생활도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거룩한 일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2. '성실한 마음으로'(5절)

'성실'(헬: 하프로테스)하게 주어진 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종들도 하나님 앞에서는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하나님의 뜻을 행'(6절)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비천한 신분으로 보잘것없는 일을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귀한 하나님의 일꾼들입니다.

 

3.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5절)

상전을 예수님처럼 섬기라는 의미가 아니라, 예수님을 대하듯이 성심껏 섬기라는 의미입니다. 그 이유는, 이렇게 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이요(딤전6:10-2, 벧전2:13-14, 18),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믿기 때문입니다(마10:41-42). 따라서 상전을 주께 하듯 섬긴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됩니다.

 

4.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8절)

세상에서는 종과 상전의 구분이 있으나, 하나님 안에서는 그 구분 없이 각자 자기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은 그 모습 그대로를 받드신다는 것입니다. 상전 또한 하나님 앞에서 종이기에(9절) 모든 사람이 서로 섬기는 일터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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