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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김포시 양촌읍 김포한강4로 278번길 7-15(석모리 882-2) 교회 031-996-9100 목사님 010-2500-2004 e-mail : jaekimpst@gmail.com 선교후원 : 농협 301-0068-481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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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07. 18.  주일오전예배

본문 :  벧후 2:20-22

 

제목 : 성도들에게 주는 경고

 

베드로전서는 고난의 문제를 다룬다면, 베드로후서는 고난 속에 나타나게되는 여러가지 미혹과 그 분별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고난의 길을 선택했다하더라도 길어지는 상황 속에서 자칫 영적으로 나태해지거나 무감각해져서 진리에 대한 기준이 무너지면서 변질되고 타락하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귀기의 때르 살아가는 성도들이 경각심을 가지고 살펴봐야 할 신앙의 모습은 무엇일까요?

1. 믿는 자도 미혹될 수 있습니다.
20절에서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나 21절에서 '의의 도를 안 후에'라는 것은 은혜받고 하나님ㄴ을 잘 믿는 성도를 의미합니다. 이런 사람들도 길어지는 위기 속에서 다시 타락하여 옛 살믕로 전락하는 일들이 일어남을 알려줍니다. 성도들에게 삶의 위기는 곧 영적 위기일 수 있기에 더욱 경계하여 거직된 신앙에 넘어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2. 미혹에 얽매이면 집니다.
20절의 '얽매이다;'라는 의미는 '섞이다'는 뜻입니다. 조금씩 마음과 생각으로 통해 미혹이 들어와 섞이게 되면 결국 미혹에 져서 그들의 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15절에서 소개하는 발람의 경우입니다. 힘들고 어렵다고 적당하게 타협하고 용납하면 결국에는 그로 인해 올무가 되어 망하게 됩니다. 작은 유혹도 조심해야 합니다.

3. 바른 신앙을 굳건하게 지켜야 합니다.
신앙인이 다시 타락하면 그 결과는 더 참혹함을 말합니다. 그 상태를 부정한 짐승의 대명사인 '개' '돼지'에 비유하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다시 옛 상태로 되돌아가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위기 속에서도 늘 깨어서 말씀과 예배, 그리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바른 신앙의 관계를 이루고 있어야 합니다. 삶의 위기는 영적각성의 경고음입니다.

2021.07.11. 주일오전예배
본문 : 베드로전서 4:7-11
제목 : 위기 속을 사는 성도들

베드로 사도는 기독교 박해로 인해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교인들에게 강한 명령법을 사용하여 합당한 신앙생활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하나님 앞과 세상 앞에서 어떻게 신앙생활해야 할지를 말씀합니다.

1. 바르게 기도하라(7절).
7절에서 명령형은 '정신차리고' 와 '근신하여'입니다. 기도하여 마음과 정신을 빼앗기지 말고 바른 생각을 가지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기도의 내용에 관한 가르침으로 위기 속에서는 당면한 문제해결보다 예수님을 찾고 사모하는것이 가장 중요함을 알아야 합니다.

2. 사랑하라(8-9절).
사랑의 구체적인 행위가 '대접(hospitality)'하는 일입니다. 환난을 피해 도망다니는 상황에서 모든 것이 부족함에도 서로 나누고 원망없이 기쁨으로 섬기라는 것입니다. 위기 속에서는 이기적이거나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이타적인 사랑이 필요합니다.

3. 사역하라(10절).
'봉사(헬:디아코네오)'는 선택으로 할수도 있고 안할수도 있는 것이 아닌 누구나 감당해야 할 사역(ministry)의 의미입니다. 모든 사람이('각각 은사를 받은대로') 모든 일에서('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하나님의 사역자로 책임감있게 사역을 감당해 내야 합니다.

4. 하나님께 영광돌려라(11절).
비록 환난의 소용돌이 속을 살아가고 있지만 범사에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창조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난 앞에서 불평불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나누고, 어떤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마음으로 솔선수범해야 합니다.

2021.07.04. 주일 오전 예배
본문 : 베드로전서 1:13-19
제목 : 코로나19시대의 기도

홍수의 심판에서 구원받은 노아의 가족들을 불러 놓고 무지개의 언약을 맺는 하나님은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 우리는 비온 뒤에 생기는 무지개를 보면서 단순히 아름답다고만 생각하지만 정작 하나님의 의도에 대해서는 무관심합니다. 왜 홍수 심판 뒤에 언약을 맺었으며, 그 언약의 증거로 무지개를 삼았는지를 살펴보면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이 어떠한지 알아봅시다.

1. 예수님의 은혜를 사모합니다(13절).
베드로의 편지를 읽는 수신자들은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라, 네로 황제의 기독교박해에도 신앙을 지키고자 모든 것을 포기할 정도의 믿음을 가진 자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까지 받은 은혜로 만족하지 말고 앞으로 주실 은혜를 사모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한없이 크기에 위기 앞에서 구해야 할 것은 예수님의 은혜입니다.

2.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됩시다(14-17절).
하나님의 본질이 '거룩'이기에 비록 삶의 위기 속에 있지만 항상 '거룩'을 추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삶의 고된 현실 앞에서 자칫하면 우리의 거룩함 쉽게 무너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룩은 인가의 노력이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만들어지기에 어떤 형편에 있든지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3. 하나님께 소망을 둡시다(18-21절).
세상이 소망이 무너진 상황에서 염려와 두려움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음을 다시금 확인시키고 있습니다. 세상의 금과 은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더 보배로운 예수의 피가 우리를 거듭나게 해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물질적 경제적인 논리가 아니라 신앙적 영적 논리의 사고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무지개 앞에 서신 하나님

2021. 6. 27. 12:36 | Posted by 소망지기

 

2021.06.27 주일 오전예배

본문: 창세기 9:12-17

제목: 무지개 앞에 서신 하나님

홍수의 심판에서 구우너받은 노아의 가족들을 불러 놓고 무지개의 언약을 맺는 하나님은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 우리는 비온 뒤에 생기는 무지개를 보면서 단순히 아름답다고만 생각하지만 정작 하나님의 의도에 대해서는 무관심합니다.왜 홍수 심판 뒤에 언약을 맺었으며, 그 언약의 증거로 무지개를 삼았는지를 살펴보면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이 어떠한지 알아봅시다.

1. 고통하시는 하나님.
모든 것을 만족스럽게 창조하신 하나님이 인간의 죄악으로 방주를 제외하고 지상의 모든 생물들을 홍수로 심판하셨습니다. 이 심판 후 하나님 스스로 홍수로 심판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기에 이릅니다. 세상이 고통할 때 창조주 하나님도 고통하기 때문입니다. 인가의 죄악된 모습을 보는 하나님의 마음도 아프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안타까와 합니다.

2.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
인간 창조 후 1600년만에 홍수 심판으로 자신의 피조물을 스스로 심판하신 하나님은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약속합니다(참고, 11절, 15절). 인간의 부패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하나님(참고, 창8:21)이 친히 이런 언약을 맺는 것은 인간의 죄악에 대하여 오래 참겠다는 의지의 고백입니다. 그러나 아주 심판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3. 죽어주시는 하나님.
무지개로 번역된 '케쉐트'는 구약성경에 75회 나오는데, 4회만 '무지개'로 번역되고 나머지는 모두 '활'로 번역됩니다. 무지개는 활처럼 휘어져 하늘을 향하고 있습니다. 죄는 인간들이 지었는데 심판하는 하나님이 함께 죽어 준다는 징표가 무지개(활)입니다. 이것이 성취된것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무지개는 십자가의 또다른 모습입니다.

 

 

바른 믿음의 분별기준

2021. 6. 20. 12:37 | Posted by 소망지기

 

 

2021. 06. 20. 주일오전예배

본문 :  데살로니가후서 2:9-12

 

제목 : 바른 믿음의 분별기준

성경은 불신자에 대한 심판도 언급하고 있지만, 대부분은 잘못된 거짓 신앙에 대한 경고와 심판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바른 신앙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분별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바른 믿음을 어떻게 분별할 수 있는지 본문을 통해 알아봅시다.

1. 능력이나 표적과 기적으로 분멸이 안됩니다(9절).
거짓 신앙도 사탄의 역사로 하나님이 행하는 능력이나 기적과 표적을 흉내 낼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은 세상의 많은 종교 속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나는 현상들입니다. 그래서 초자연적인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으로 바른 신앙이라고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모든 현상을 통해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영광만이 드러나도록 일하십니다.

2. 사람들의 생각이나 판단으로 분별이 안됩니다(11절).
11절은 언뜻 보면 마치 하나님이 거짓 신앙의 원인인 것처럼 오해될 소지가 있는데, 그 뜻은 이미 사람들은 불의를 행하기 좋아하기에(12절) 하나님이 사탄의 미혹에 내버려 둔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마음이 떠난 사람들을 미혹되게 내버려두겠다는 것은 비록 다수의 생각이나 호응이 있더라도 하나님과 상관없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3. 진리의 사랑을 받는지로 분별해야 합니다(10절).
9절의 '악한 자'는 8절의 '불법한 자'(헬: '아노모스' = 법이 없는 자, 무법자)를 칭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이나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면서 바리새인들처럼 말로는 하나님을 말하지만 실상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신앙의 분별기준은 바로 삶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이고 전부인 모습이 나타나는가로 판단해야 합니다. 믿음은 '진리의 사랑'이신 예수님에 대한 신뢰와 헌신에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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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야 할 믿음의 길

2021. 6. 13. 12:39 | Posted by 소망지기

 

 

2021. 06. 13. 주일오전예배

본문 :  고린도전서 14:1

제목 : 우리가 가야 할 믿음의 길 

여러가지 교회 내적인 문제로 다툼과 분열이 있는 고린도 교회를 향해 바른 신앙에 대하여 가장 간단하면서도 울림이 있는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이 자칫하면 비본질적인 문제에 집착하게 되어 정도를 벗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어떤 신앙의 모습을 요구하고 있는지 본문을 통해 살펴봅시다.

1. 사랑을 추구하며,
사랑을 추구한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의 감동적인 은혜를 덧입는 것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의 실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고전12:4-7에서 언급하는 것은 사랑의 실체가 아니라 사랑의 열매들입니다. 사랑의 본질인 예수 그리스도를 추구하면 자연히 그 사랑이 우리의 삶 속에 여러가지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사랑하려고 애쓰지 말고 예수님의 사랑에 깊이 거하려는 노력이 먼저입니다.

2. 신령한 것을 사모하며,
세성적이로 육적인 것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신령한 것'을 말하는데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이것은 은사난 성령의 역사와 같이 특별하고 신비로운 것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에 우리 일상의 큰 것이나 작은 것이나, 의미가 있거나 없거나 하는 모든 것에서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발견하고 깨닫는 삶을 의미합니다.

3. 예언을 하려고 하라.
'예언'이라는 것은 단순히 '미래의 일을 미리 알려 주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의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달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 과거, 현재, 미래의 사건들이 있을 뿐입니다. 성도들이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고 상고하며 묵상함으로 교회의 덕을 세우며(12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2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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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자들을 위한 기도

2021. 6. 6. 12:32 | Posted by 소망지기

 

 

2021. 06. 06. 주일오전예배

본문 :  요한복음 17:20-24

제목 : 믿는 자들을 위한 기도 

요한복음 17장은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로서 1-5절까지는 예수님 자신을 위해, 6-19절까지는 제자들을 위해, 그리고 20-26절까지는 장차 믿는 자들을 위한 간절한 기도입니다. 예수님의 기도 속에는 믿는 자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기를 바라는지 예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숙하고 바른 믿음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본문을 통해 세가지 질문을 던져보고 그에 대한 해답을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믿는 사람들을 위해 굳이 기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20절).
예수님은 제자들의 건도로 믿게 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데 이미 22절에서 예수님의 영광을 그들에게 주었다고 하시면서 왜 기도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23절 끝부분에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라고 하십니다. 즉, 믿음이란 자기의 구원만이 목적이 아니라, 믿는 자를 통해 믿지 않는 사람들도 하나님ㄴ을 알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사람들끼리 하난가 됩일까? 하나님과 하나가 됨일까? (21-23절).
11절에서 제자들을 위한 기도에서도 '하나됨'을 강조하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에서도 '하나됨'을 반복해서 강조하십니다. 그 하나됨의 기준을 하나님과 자신을 언급하는데('우리와 같이'), 이는 예수님이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심으로 하나됨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믿음이란 하나님과 하나되는 순종의 삶을 의미합니다.,

3. 예수님과 함께 있을 곳은 어디일까? (24절).
'믿는 자' 또는 '내게 주신 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을 곳은 어디일까요? 천국일까요? 만약 천국이라면 당연히 갈 천국을 위해 굳이 기도할 필요가 있을까요? 예수님이 계시는 곳은 '하나님의 사랑 안'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듯 믿는 자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랑이(23절) 믿는 자들 안에 있기에 하나님의 사랑 안에 머물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2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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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들아 들으라!

2021. 5. 30. 12:40 | Posted by 소망지기

 

 

2021. 05. 30. 주일오전예배

본문 : 예레미먀 7:1-7

제목 : 아들들아 들으라!

가정의 들을 맞아 하나님과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아름다운 관계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유대인들과 같은 하나님을 믿고 섬기지만, 전혀 다른 관계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아들로서 기쁨과 감사함으로 하나님 안에 살아가지만, 자칫하면 또 다른 실수르 범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보여주는 3가지 거짓된 신앙에 대하여 살펴봅시다.

1.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4절)
본문은 요시야 왕이 신앙개혁의 하나로 성전을 새롭게 하는 기간(대하34:3)에 성전 입구에서 선포된 말씀입니다. 성전에 제사 드리러 오는 사람들에게 '여호와의 성전'이라는 말은 거짓이라고 하는 것은 성전에서 드리는 제사 자체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평소의 '길과 행위'(3,5절)가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2.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10절).
성전에서 정기적인 예배를 드리는 것이 구원을 받은 신앙의 전부는 아닙니다. 그리고 구원의 증거가 성전에서 예물을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에 합당한 삶과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참고, 9절, 11절). 종교 지도자들의 잘못된 가르침으로 인해 예배만 열심히 드리면 어떻게 살든지 상관없다는 생각은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의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3. '나는 최선을 다해  신앙생활하고 있어'(21절).
제물을 가지고 제사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그 제물을 먹으라고 합니다. 제물을 하나님께 드릴 필요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율법을 주시면서 기대했던 것은 율법 자체에 대한 헌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 마치 열심 있고 좋은 신앙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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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아버지에게

2021. 5. 23. 12:38 | Posted by 소망지기

 

 

2021. 05. 23. 주일오전예배

본문 : 고린도전서 14:20

제목 : 아들이 아버지에게

 

지난주에 하나님 아버지가 아들인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에 관해 살펴보았다면, 화나님의 아들로써 하나님 앞에 아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지 살펴봅시다. 유대문화 속에서 '아빠 아버지'는 친밀함만이 아니라 가장으로서의 권위와 위엄 앞에 순종하며 복종해야 할 존재입니다. 성숙한 아들로 성장하는 신앙의 단계 속에서 자신의 신앙을 찾아보세요.

1. 유아기 단계(벧전 2:2).
신앙의 출발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시작합니다. 세상의 유행이나 자신의 욕심에 희석되지 않는 있는그대로의 성경 말씀('순전하고')과 세상의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으로 이해된 말씀('신령한')을 단순히 기대하고 바라는 것을 넘어 '갈망'해야 합니다.

2. 소년기 단계(옙 5:1, 살전2:11)
바른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익혔다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학고 복종하는 연습과 훈련의 단계입니다. 단순히 아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대로 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수고하는 단계입니다. '다르'은 은혜로 되지만, '아들의 생활'은 훈련으로 됩니다.

3. 청년기 단계(요일 2:14).
삶 속에서 믿음으로 살아내는 적극적이고 투쟁적인 단계입니다. 청년 에스겔이 포로로 바벨론으로 끌려와 수용소에서 기약 없는 나날을 보낼 때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깨달은 것이 '여호와삼마'(겔48:35)입니다. 각자가 있는 곳에서 하나님느이 뜻을 펼쳐야 합니다.

4. 장년기 단계(벧후 1:4, 고전 4:15).
요령이나 기술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으로 변화된 '아버지의 심장'으로 또다른 사람들을 세우고 양육하는 단계입니다. 사람들로부터 어떤 대가나 인정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영혼에 대한 사랑으로 끝까지 품고 사랑하고 섬기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양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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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아들에게

2021. 5. 16. 12:42 | Posted by 소망지기

 

 

2021. 05. 16. 주일오전예배

본문 : 에베소서 1:3-7

제목 :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나님께서 독생자('휘오스') 예수를 통하여 믿는 성도들을 '아들(양자=휘오데시아)'로 삼으신 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이자 사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종이 아닌 '양자'로서 아들의 권리를 모두 허락해 주셨다는 사실은 모든 크리스천에게 큰 힘과 위로가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주는 영적 교훈을 다시한번 되새겨 봅시다.

1.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3절).
성도들이 하나님의 양자가 된 것은 자신의 능력이나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가능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양자들이 머무는 자리는 오직 예수님 아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을 떠난 어떤 행위나 신념도 의미 없습니다.

2.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입니다(3절).
하나님의 '양자'라는 사실 자체가 인간의 지식이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역사이자 은혜입니다. 피조물이자 죄인인 인간을 거룩하신 하나님 '아빠 아버지'라 부르며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은 세상의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특권이자 복입니다.

3.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는 것입니다(6절).
하나님과 상관없이 죄인으로 살던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로 신분이 바뀜('Being')이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무슨 특별한 일을 하거나 많은 수고를 통한 영광스러운 업적('Doing')보다 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됨이 곧 찬송입니다.

4. 죄 사함을 통해 거룩한 사람이 되었습니다(7절).
사람의 노력으로는 자기 죄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 됨으로써 거룩하고 흠 없는 아들로 인정해 줍니다. 전혀 죄를 짓지 않는 존재로서가 아니라,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용서와 은혜로 덮어주시는 사랑을 덧입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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