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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김포시 양촌읍 김포한강4로 278번길 7-15(석모리 882-2) 교회 031-996-9100 목사님 010-2500-2004 e-mail : jaekimpst@gmail.com 선교후원 : 농협 301-0068-481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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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역사하는 말씀의 능력

2022. 2. 13. 12:52 | Posted by 소망지기

 

2022.02.13. 주일 오전 예배
본문 : 마태복음 11:2-5
제목 : 살아 역사하는 말씀의 능력

 

 

감옥에 갇힌 세례요한은 자신의 처지에 불안을 느끼고 자기 제자를 보내 예수님이 오실 메시아인지를 확인합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세례 요한에게 실질적인 혜택이나 상황을 바꾸는 내용이 아니었습니다(참고, 5절). 감옥에서 이 대답을 전해 듣는 세례요한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세례요한과 예수님 사이에 주고받은 대화 속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와 능력이 담겨있습니다.

1. 세례요한은 엘리야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은 말라기에 예언되고(말3:1, 4:5), 태어나기 전 천사의 예언(눅1:17)과 예수님의 직접적인 언급(마11:14)으로 볼 때 엘리야와 같은 삶과 사역을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엘리야의 삶을 그대로 살고 있었고(참고, 마3:4, 왕하1:8), 당시의 타락된 삶에 대한 회개와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였습니다.

2. 엘리야처럼 세미한 소리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의 승리 후에 이세벨의 위협으로 도망자가 되고 맙니다(참고, 왕상19장). 하나님의 도움으로 호렙산까지 왔지만 강한 바람, 지진, 불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세미한 소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회복하게 됩니다. 세례요한도 감옥에서 기적적인 자유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엘리야처럼 깨닫게 되었습니다.

3. 말씀을 통해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엘리야나 세례요한이나 한결같이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자신으 믿음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불수레를 타고 승천했지만, 요한은 비록 목이 잘려 죽을지라도 믿음으로 산 요한을 향해 '가장 큰 자'(11절) 라고 칭찬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는 모두가 큰 자입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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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살아 역사하는 말씀

2022. 2. 6. 12:37 | Posted by 소망지기

 

2022.02.06. 주일오전예배
본문 : 사무엘상 3:1
제목 : 아직도 살아 역사하는 말씀

 

 

하나나님은 여전히 한나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어린 사무엘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고 계십니다(참고, 4절). 그런데도 왜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는다"고 하는 것일까요? 이 말씀은 사무엘이 성장하던 때의 엘리 제사장과 그 세대의 신앙 상태에 대한 진단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제사장 엘리와 어린 사무엘을 비교하면서 하나님의 말씀과 이상이 없는 신앙은 어떤 모습인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은 알지만 순종하지 않는 상태.
제사장이면 하나님에 대하여 많은 지식이 있고 남을 가르칠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그러나 엘리는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는 하지만(참고, 3:9), 정작 자기 가정에 임한 하나님의 경고에 다하여 무관심합니다(참고, 2:27, 이하, 3:12-14).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알고 있지만 정작 순종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이상이 임하지 않습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은 듣지만 깨닫지 못하는 상태.
엘리 제사장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오래도록 해왔지만, 영적인 면에는 지혜가 없었습니다. 한나가 기도하는 것을 술 취한 것으로 여기거나(참고, 1:13-14), 자기의 두 아들이 악행에도 무관심하고, 오히려 사람들의 이목에 더 신경 쓰는 모습을 보여줍니다(참고, 2:22-24).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고 인간적인 생각으로 살아갑니다.

3.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보지 못하는 상태.
'이상(히: 카존)'이란 '본다'라는 말에서 말에서 파생하여 꿈, 비전, 묵시를 의미합니다. '이상이 보이지 않는다'라는 것은 무엇을 보지 못한다는 것일까요? 일반적으로 '비전'하면 미래적 목표에 대한 성취나 성공의 그림을 떠올리지만, 성경에서는 사무엘이 밤중에 하나님을 만나듯이 하나님을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말씀 속에서 하나님을 보는 것이 비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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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살아 역사 하는 말씀

2022. 1. 30. 12:37 | Posted by 소망지기

 

2022.01.30. 주일오전예배
본문 : 누가복음 16:27-31
제목 : 지금도 살아 역사하는 말씀

 

 

오늘 본문은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예수님이 강조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부자와 거지, 천국과 지옥, 위로와 고통 등의 양극단의 상황을 소개하면서 강조하려고 하는 것은 바로 "모세와 선지자들"로 표현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즉, 예수님의 목적은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특별한 사람의 간증이나 경험이 아니라, 성경 속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어야 구원이 있음을 알려 주려는 것입니다.

1.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의 성경은 현재 우리가 가진 구약 성경으로, 크게 모세오경과 선지자의 예언서로 구분합니다. 그래서 '모세와 선지자'라고 하면 의례적으로 구약 성경 전체를 지칭하는 표현입니다. 그렇다면 죽었다가 다시 산 사람의 간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의 문화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부자나 거지나 익숙한 종교적 환경 속에서 생활했습니다. 그러나 나사로는 비록 거지의 삶을 살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써 구원받았지만, 부자는 익숙한 종교 생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3.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성경은 단순히 성경에 대한 이해와 종교적 지식을 쌓는 용도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성경 안에 있는 모든 하나님의 역사는 지금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으며, 말씀대로 이우어지고 있음을 믿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을 눈으로만 읽을 것이 아니라 가슴과 믿음의 눈으로 읽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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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역사하는 말씀

2022. 1. 23. 12:36 | Posted by 소망지기

 

2022.01.23. 주일오전예배
본문 : 히브리서 4:12-13
제목 : 살아 역사하는 말씀

 

 

신앙생활은 마라톤처럼 긴 여정을 달리는 과정입니다. 은혜로 충만하여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때도 있지만 반대로 불신과 반항과 무관심으로 치달을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더라도 감동이나 감격이 없이 무료하게 듣고 보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넘친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이런 은혜를 누릴 수 있을까요?

1. 본문에서 살아있고 활력있는 말씀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배경
히브리서 저자는 1장부터 예수님은 누구인가에 대하여 구약 성경을 인용하면서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이고(1:3), 천사보다 뛰어나고(1:4), 모세보다 뛰어난 분(3:3)임을 구약 성경으로 확인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하나님의 말씀이 예수님을 통해 완벽하게 이루어졌음을 고백하고 찬양하는 것이 오늘 본문이 가진 배경입니다.

2. 살아 역사하는 말씀.
히브리서를 기록하고 있는 저자의 마음속에는 구약의 말씀을 단순히 지식이나 정보로 여기지 않고, 예수님을 통해 직접적으로 역사하고 성취하는 활력을 가진 생명있는 말씀으로 경험하고, 이런 성령의 감동 아래서 히브리서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성경 말씀이 우리 가슴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있는 말씀으로 경험되어져야 합니다.

3. 살아 역사하는 말씀을 경험합시다.
성경 말씀은 역사적 시간과 공간과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진 문화나 생각이나 지식으로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성경 속의 상황으로 들어가서 성경 속의 인물이 경험하고 있는 것을 함께 경험하며 공감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모든 시대에 모든 사람이 능히 경험하고 느끼고 깨달을 수 있도록 성령이 역사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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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만 봐라

2022. 1. 16. 12:30 | Posted by 소망지기

 

2022.01.16. 주일오전예배
본문 : 열왕기하 5:15-18
제목 : 나아만 봐라

 

 

믿음이 자라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객관적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수단입니다. 이 말씀을 바르게 해석하고 이해하고 믿고 적용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성경에 대한 바른 이해보다는 보고싶은 대로, 원하는 대로 성경을 이해하기 때문에 바른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오늘 성경에 등장하는 나아만 장군의 치유 사건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있을까요?

1. 나아만을 고치신 이유.
선지자 엘리야와 엘리사가 활동한 북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에 빠져있어서 선지자들은 하나님께 다시 돌아와 순종하면 은혜가 회복되고 그렇지 않으면 심판이 있을 것이란 것을 선포했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북이스라엘과 적대관계에 있는 아람의 군대장관도 순종하기에 고쳐 주신 것처럼, 너희도 하나님께 순종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2. 나아만의 반응.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의 말에 순종한 이유는 순전히 자신의 질병을 고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목적이 달성된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물을 드리려 했고, 이스라엘의 흙을 가져가고, 림몬의 신당에 가는 것에 양해를 구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하나님을 알려고 하거나 믿으려는 노력은 없었습니다. 그 결과 참 '믿음'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3. 은혜는 믿음이 아니다.
은혜나 응답은 믿음이 아니라 믿음을 향한 시작이나 동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바른 믿음은 하나님을 알고, 이해하고, 예배하며, 그 통치 아래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방법은 성경입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성경이 말씀하시는 방법으로 신앙 생활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신앙생활의 유일한 지침으로 믿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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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지 말고 믿으세요

2022. 1. 9. 12:25 | Posted by 소망지기

 

 

2022.01.09.  주일오전예배
본문 : 사도행전 2:34-36
제목 : 듣지 말고 믿으세요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베드로의 신앙 여정이 가장 드라마틱하게 우리이게 도전과 교훈을 줍니다. 3년 넘게 예수님을 따르면서 많은 기적을 목격했고, 직접적인 가르침도 많이 받았음에도 예수님을 배신하고 떠났던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공생애 동안 베드로가 보여 준 헌신과 충성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그리고 베드로는 언제, 어떻게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고 믿고 따르는 제자가 되었을까요?

1. 베드로가 가진 믿음
그물과 배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다고 제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제자는 스승의 말씀을 듣고 이해하여 그 뜻을 이루는 사람인데,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말씀을 듣기는 했지만 믿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부정하고 자신이 원하는 세속적인 메시아사상에 물들어 있었습니다. 말씀보다는 자신의 확신을 더 믿었습니다.

2. 베드로의 변화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신 후 120명의 성도가 전심으로 기도했을 때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을 받게 됩니다. 이때 방언의 역사만이 아니라 말씀에 대한 믿음과 확신도 임하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의 설교 속에도 요엘과 시편의 말씀이 인용되면서 그 말씀이 이루어짐을 믿음으로 선포하고 있습니다. 드이어 말씀이 이해를 넘어 믿음이 되었습니다.

3. 말씀은 듣지만 말고 믿어야 합니다.
베드로는 많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믿지는 못했습니다. 그 결과 실패한 제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성령세례를 통해 말씀을 믿음으로써 변화되어 예수님께 온전히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읽고 듣고 암송하도록 주신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믿을 때 능력이 생기고 세상을 믿음으로 살아낼 지혜와 명철이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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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이 헌신합니다

2022. 1. 2. 12:21 | Posted by 소망지기

 

2022.01.02. 주일오전예배
본문 : 시편 110:1-7
제목 : 즐거이 헌신합시다

 

 

신약성경 속에서 시편 110편은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 신앙생활 하는 성도들에게 복음과 믿음을 가르치는데 가장 많이 인용된 시편입니다(약 20회 정도). 예수님도 자신이 그리스도이심을 증명하는데 인용하기도 하셨습니다(마22:41-46). 본문은 1-2절은 성부의 역사를, 4-7절은 성자 예수의 역사를 언급하면서 그 한가운데 '주의 백성'에 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주의 백성들에게 주어진 사역은 무엇일까요?

1. '거룩한 옷을 입고'
옷은 그 사람의 신분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거룩한 옷을 입는다는 것은 하나님ㄴ의 자녀로 굽졀되고 성별된 삶의 모습을 의미합니다. 성도는 문제 많은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의 자녀로 수별되게 살아야 합니다. 마치 유니폼을 입은 사람처럼, 예수 믿는 사람인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도록 언행과 삶의 가치관이 믿는 자의 모습을 갖추어야 합니다.

2. '즐거이 헌신하니'
'즐거이 헌신하다'로 번역된 단어는 '네바다'라는 말인데 '자원' '자발'의 뜻이 있어 레위기에는 '자원예물'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자원하고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헌신하는 신앙을 뜻합니다. 수동적이고 피동적인 신앙에서 벗어나 스스로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헌심함으로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의 사역에 동역해야 합니다.

3.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자원하여 헌신함으로써 열정으로 물쳐진 또 다른 '주의 청년'들이 예수님께 나오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역에 '마중물'역할을 해야 합니다. 자신의 문제에 매여있기보다는 다른 많은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여 주의 일꾼으로 삼기 위해 신앙의 모범으로서 헌신된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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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 - 코로나시대의 희망

2021. 12. 26. 12:26 | Posted by 소망지기

 

2021.12.26. 주일예배
본문 : 누가복음 1:46-50
제목 : 성탄-코로나시대의 희망

 

 

어린 나이에 약혼한 처녀에게 임신 소식은 삶의 뿌리가 흔들리는 큰 충격이고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잉태했다는 사실이 다른 어떤 두려움보다 더 크고 귀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염려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들 가슴 속에 예수님이 구세주로 임하신다면 기쁨과 감사로 가득한 삶을 살아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현 상황을 극복할 유일한 희망입니다.

1. 비천한 자를 복되게 하십니다(48절).
마리아가 자신을 향해 '비천함'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나, 가난한 목수와 결혼하고, 갈릴리에 거주하게 되는 것을 보면 마리아의 형편은 좋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잉태함으로 모든 사람으로부터 행복한 사람이라고 불릴 것을 확신합니다. 모든 사람이 간절히 찾던 행복은 바로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임을 마리아는 알고 있습니다.

2. 연약한 자에게 큰일을 행하십니다(49절).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 잡을 유능한 사람을 찾는다면 마리아는 제일 먼저 제외되었을 것입니다. 연약한 여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거러나 그리스도를 잉태한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큰 일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요6:29). 그렇다면 혼란한 세상에서 하는 가장 큰 일은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것입니다.

3. 경외하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50절).
마리아는 가브리엘 천사의 임신 소식을 듣고 엘리사벳을 방문하여 천사의 말을 확인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게 됩니다. 그리고 치러야 할 대가보다 하나님이 베푸실 '긍휼'이 영원할 것임을 확신합니다. 요즘처럼 어려운 시기에 믿음의 대가는 혹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는 그것보다 비교할 수 없이 크고 값비싼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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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진 속에 사는 예수님

2021. 12. 19. 12:43 | Posted by 소망지기

 

2021. 12. 19. 주일오전예배
본문 : 누가복음 4:16-19
제목 : 적진 속에 사는 예수님

룻이나 모르드게처럼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으 뜻을 이루며 사는 것이 믿음의 참 모습이라면,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은 어떤 모습으로 살았을까요? 예수님은 탄생하자마자 살해 위협에 시달렸고, 공생애를 시작하자 많은 박해를 받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고향에서 처음으로 행하신 설교입니다. 이 설교에서 예수님은 앞으로 격게될 갖은 핍박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실지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1. 예배하는 삶입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신 예수님은 고향에서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예배드렸습니다. 당시 종교인들의 타락과 문제점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임에도 회당에서 하나님을 예배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은 주변 상황과 상관없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엎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 드리지 못하는 이유들은 단지 핑계에 불과합니다.

2. 말씀으로 사는 삶입니다.
예수님이 읽으신 이사야 61:1-2의 말씀은 예수님의 삶을 압축한 엑기스와 같은 말씀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삶이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배우고, 암송하고, 묵상하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방향과 목표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것이어야 함을 알려줍니다.

3. 사명으로 사는 삶입니다.
예수님은 이사야의 말씀을 통하여 자신의 삶의 방향을 '가난한 자', '포로된 자', '눈 먼자', '눌린 자'들을 위한 삶임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메시야로서 더 멋있는 모습의 사역이 가능했지만 이런 것을 사명으로 삼고 고난의 길을 걸었습니다. 말씀을 통해 받은 사명을 하나님의 뜻이요 운명이로 알고 살았을 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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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진 속에 사는 그리스도인

2021. 12. 12. 12:43 | Posted by 소망지기

 

2021.12.12. 주일오전예배
본문 : 에스더 3:1-6
제목 : 적진 속에 사는 그리스도인

 

 

에스더서에는 예루살렘으로 귀한하지 않고 이방인 땅에 정착한 유대인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입니다. 그런데 룻기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란 언급도 없고, 하나님의 특별한 말씀도 없지만 믿음의 사람들이 이방인들의 따가운 눈총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귀중한 책입니다. 모르드개의 모습을 보면서 오늘날 교회와 그리스도인을 바라보는 세상의 따가운 시선 속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함께 살펴봅시다.

1. 세상에 무릎 꿇지 않습니다(2-4절).
하만 앞에 무릎을 꿇지 않는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아각'은 아말렉의 왕 이름입니다. 대대로 이스라엘을 괴롭힌 아말렉의 후손이 하만입니다. 유대인으로서 아각 사람에게 절하지 않는 것은 영적인 지조를 지키는 신앙적인 결단입니다. 비록 이에 대한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단호히 영적인 정절을 지키려는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2. 세상과 구별된 생활을 합니다(8절).
하만이 왕에게 보고한 것처럼 이방 나라에 살더라도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 법률이 만민의 것과 달라서"(8절). 세상은 마귀의 정체성으로 살 것인지(참고, 계13:17), 하나님의 정체성으로 살 것인지(참고, 계14:1) 끊임없이 요구합니다. 핍박을 당하더라도 하나님 자녀의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3. 하나님과 연합된 삶을 삽니다(4:14절).
사람들은 왕후가 도니 에스더가 위기에서 구원해 줄 것이라 생각하지만, 정작 모르드개는 하나님은 에스더가 아니어도 다른 방법으로도 능히 구원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세상의 성공이나 권세보다 하나님과 연합된 삶이 능력임을 잘 아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도 왕의 명령보다 하나님의 명령에 철저하게 순종하였습니다(참고, 9: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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