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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김포시 양촌읍 김포한강4로 278번길 7-15(석모리 882-2) 교회 031-996-9100 목사님 010-2500-2004 e-mail : jaekimpst@gmail.com 선교후원 : 농협 301-0068-481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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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말씀'에 해당되는 글 712

  1. 2019.12.29 한 해의 마무리
  2. 2019.12.22 예수님의 시작
  3. 2019.12.15 에클레시아의 교회
  4. 2019.12.08 에클레시아의 열매
  5. 2019.12.01 에클레시아의 형통
  6. 2019.11.24 에클레시아의 성숙
  7. 2019.11.17 에클레시아의 성장
  8. 2019.11.10 에클레시아의 감사
  9. 2019.11.03 에클레시아의 사명
  10. 2019.10.27 에클레시아의 길

한 해의 마무리

2019. 12. 29. 15:10 | Posted by 소망지기

 

2019. 12. 29. 주일 오전예배

본문 : 야고보서 2:18-22

 

 

오늘 본문은 2019년을 시작하면서 첫 주일 설교본문이면서 올해의 표어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의 신앙에 안주하지 않고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는 구체적인 삶의 실천을 강조했던 한 해였습니다. 교회 안에 머물며, 예배의 참여자가 아니라 삶의 현장과 일상 속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에클레시아'의 회복을 꿈꾸는 2019년이었습니다. 2019년을 마무리하며 한 해 동안 도전 받은 말씀을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가집시다.

1. 온전한 믿음을 추구합시다.
단순히 하나님을 믿고 경외한다는 것은 귀신들도 하고 있는 것으로 그것이 신앙의 전부가 아님을 강조합니다(19절). 그렇다면 온전한 믿음이란 어떤 것입니까? 이에 대하여 22절에서 분명한 대답을 줍니다. '믿음과 행함이 함께 일하는'것입니다. 믿음과 행함이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행함, 행함과 믿음이 함께 드러나는 신앙을 추구해야 합니다.

2. 일상의 신앙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믿음이 실행되는 현장은 우리의 일상입니다. 일상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 삶의 현장은 바로 우리 자신과,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이 세가지 현장 속에서 믿음이 뿌리내리고 자라서 열매맺어야 합니다. 우리의 일상이 곧 믿음의 현장이자 예배처소입니다.

3. 믿음의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믿음의 행함이란 행함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은 항상 '위기'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런 위기속에서 문제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그 뜻을 깨달아 성취해 나아가는 것이 믿음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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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시작

2019. 12. 22. 14:28 | Posted by 소망지기

 

2019. 12. 22. 주일 오전예배

본문 : 마태복음 2:1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은 수 천년 전에 미리 계획하신 하나님의 의도였습니다(참고, 창3:15).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오신 아기 예수는 베들레햄에서 탄생하는 것을 시작으로, 예루살렘으로, 애굽으로, 그리고 나사렛으로 그 장소를 옮겨가는 것을 봅니다. 이런 과정 속에 깃들어있는 하나님의 의도를 살피고,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생각과 뜻을 깨닫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1. 낮아지심으로 시작하셨습니다.
우주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이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시는데, 작은 시골인 베들레햄의 마구간의 구유에, 세상 왕의 위협을 피해 애굽으로 피신하고, 나사렛이란 성경에 등장하지도 않는 시골 촌 구석에서 목수의 아들로 성장하였습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분이지만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줍니다.

2. '변두리'에서 사작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변두리'를 싫어합니다. 모두가 세상의 중심과 중앙에 서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신앙의 중심인 예루살렘이 아니라 그 주변이나, 또는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시골의 작은 마을에서 성장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세상 가치관과는 달리 하나님이 계신 곳이 바로 세상의 '중심'이자 세상의 '중앙'이기 때문입닌다.

3. 말씀에 순종하심으로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시작으로 모든 삶의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베들레햄에서 출생(6절), 헤롯의 위협 속에서도 예루살렘 성전으로(눅2:22), 애굽으로 피신(14-15절), 나사렛에 정착(23절) 등, 모든 상황에서 삶을 결정하는 기준을 말씀이었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주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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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클레시아의 교회

2019. 12. 15. 15:11 | Posted by 소망지기

 

2019. 12. 15. 주일 오전예배

본문 : 누가복음 19:45-46

 

 

 십자가에 달리기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예수님은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드을 다 내쫒으시며 하나님의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지 말라며 화를 내셨습니다. 이 성전청결 사건은 우리가 모여 예배드리는 교회의 본질을 다시금 생각케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의 '성전'이나 신양시대의 '교회'는 모두 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교회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함께 살펴봅시다.

1. 하나님의 집
"내 집:이란 하나님의 집을 말합니다. 이는 곧 하나님이 주인이시고 하나님이 모든 관심의 대상이 되는 곳이란 의미입니다. 그런데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서전을 통해 자신들의 유익을 추구하고 부를 축적하는 장소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교회란 웅장한 건물이나 화려한 예식이 중요한 곳이 아니라, 하나님께만 영광돌리도록 구별된 거룩한 곳입니다.

2. 기도하는 집
'기도하는 집'이란 항상 기도만 하는 곳이란 의미가 아니라,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장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기도는 하나님을 찾고 구함으로서(예, 눅11:9-13, 렘29:12-13) 하나님의 뜻 가운데 문제해결을 요청하는 것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3. 섬기는 집
본문과 연결되는 내용이 요한복음 2장에 등장합니다. 성전을 헐면 사흘동안에 다시 세우겠다(요2:19)는 말씀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을 자신의 육체임을 말합니다(요2:21-22). 결국 교회란 예수님처럼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기 위해 자신을 섬김의 도구로 내어 놓는 곳입니다. 교회는 '이용하러' 오는 곳이 아니라 '섬기러' 오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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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클레시아의 열매

2019. 12. 8. 15:09 | Posted by 소망지기

 

2019. 12. 08. 주일 오전예배

본문 : 디모데후서 4:16-18

 

 

디모데후서는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갇혀 죽음을 예감하면서 쓴 가장 마지막 서신서입니다. 파란만장한 인생을 돌아보며 느낀 소회를 믿음의 아들이자 신앙의 후배인 디모데에게 전하는 바울의 모습을 통해 성도들이 걸어가는 믿음의 길의 끝에서 어떤 결실을 맺어야 할지 생각해 봅시다. 에클레시아로서 사역과 신앙의 열매가 무엇일까요?

1. 예수 그리스도(17절, 18절 상)
삶의 마지막(참고, 6절)을 맞이하면서 오랜 사역기간 동안 잃어버리고 떠나간 많은 것들이 있었겠지만(참고, 16절) 끝까지 늘 함께하시는 분이 '주님'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삶이란 예수 그리스도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분이란 것을 깨닫고 그와 함께 동행하는 삶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열매는 결국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믿음으로 인도하시면서 세상에 보여 주고싶은 열매는 우리 자신이 아닌 예수님입니다.

2. 진리의 말씀(17절: '선포된 말씀' = '케리그마')
바울은 일생동안 많은 교회개척과 기적과 이적으로 예수님을 증거했지만, 그 사역 중에서 가장 의미있는 사역은 바로 말씀을 '온전히 전파'(헬: '플레로포레오')하는 것임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역경으로부터 자신을 구원할 이유를 진리의 말씀이 변질되지 않고 온전히 전달되는 것에서 찾고 있듯이, 사역의 규모보다 진리의 말씀이 열매입니다.

3. 사람(16절).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용서의 기도를 드렸고(눅23:34), 스데반이 순교하면서 그와 같이 용서의 기도를 드렸듯이(행7:60), 바울도 자신을 버린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고 그들을 다 품는 모습을 보면서 신앙의 열매는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역도 결국은 사람을 살리는 사역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도구가 아니라 목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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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클레시아의 형통

2019. 12. 1. 15:19 | Posted by 소망지기

 

2019. 12. 01. 주일 오전예배

본문 : 여호수아 1:7-9

 

성경에서 말하는 공동체적인 의미의 '부흥'이나 개인적인 의미의 '형통'의 의미가 오늘날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부흥'이나 '성공'의 의미와는 많이 다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의미를 떠나 시대적인 의미로만 이해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변질시키는 중대한 범죄행위에 속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성도들이 누려야할 '형통'은 어떤 의미일까요?

1. '형통'의 성경적 의미.
성경에서 '부흥'(합3:2, '하야')이란 '살아있다'는 의미이고, '형통'이란 어떻게 사는가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형통'이라고 번역된 단어가 2가지 있는데, '짜라흐'(창24:42, 56; 전진하다, 성취하다, 목적을 이루다)와 '싸칼'(수1:7, 8; 신중하다, 지혜롭다)이란 단어입니다. 이 두 단어의 공통점은 주어진 상황이나 상태가 크거나 좋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을 잘 이루고 있는지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2. '형통'이란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깨닫고 발견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시는 형통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5장에는 여리고성 앞에서 하나님의 군대 대장을 만나는 장면을 소개합니다. 이 사건이 주는 의미는 걸어가는 모든 인생길이 하나님이 함께 거하시는 거룩한 곳이기에 하나님을 기억하고 깨닫고 발견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3. '형통'이란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깨닫고 발견'(히: '싸칼')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히: '짜라흐') 헌신을 통하여 형통한 삶을 '사는'(히: '하야')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 바로 예배입니다. 비록 힘들고 고통스런 상황에 놓여있다 하더라도 그곳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선포하고('케리그마')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예배자의 삶이 바로 형통이요, 부흥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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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클레시아의 성숙

2019. 11. 24. 14:04 | Posted by 소망지기

 

2019. 11. 24. 주일 오전예배

본문 : 골로새서 1:24-29

 

신앙의 성장은 성숙한 신앙인의 삶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에클레시아를 통한 신앙의 성숙은 어떤 모습일까요? 신앙에서 성숙이 의미하는 것이 여러 가지 있겠지만, 오늘 본문을 통해 주시는 신앙의 성숙을 살펴보면서 각자의 신앙의 현주소를 살펴봅시다. 로마 감옥에 갇힌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성장을 격려하면서(6절) 자신의 신앙의 삶을 잠깐 소개하고 있습니다. 성숙한 신앙이란....

1. 신앙의 성숙은 하나님의 이꾼이 되는 것입니다(23-27절).
성경에서 '일꾼'(헬: 디아코노스)이란 섬기는 자(마23:11), 하인(요2:5), 사자(롬13:4), 사역자(고전3:5), 집사(딤전3:8) 등으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바울은 '복음의 일꾼' '교회의 일꾼'이 되어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자가 되었음을 말합니다. 신앙의 성숙은 자신의 성장을 넘어 다은 사람들을 섬기는 자로 헌신하는 것입니다.

2. 신앙의 성숙은 다른 사람을 믿음으로 세우는 것입니다(28절 하반절).
가장 의미있는 섬기은 믿음의 사람('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으로 세우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놀랍고도 풍성한 '비밀'이 숨겨져 있기(27절) 때문입니다. 우리가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다른 사람들도 누리도록 하는 것이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니다. '자기'를 넘어 '너희'에게로 나가야 합니다.

3. 신앙의 성숙은 복음을 전파하고, 가르치고, 수고합니다(28-29절).
각 사람을 믿음의 완전한 자로 세우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복음으로 '전파'(케리그마)해야하고, 그 복음을 자세하게 '가르쳐'(디다케) 하나님의 자녀로 합당하게 살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각자의 삶에서도 믿음의 모범을 보이도록 부단히 '수고'(코피아오)해야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수고와 복음으로 살아가는 삶의 수고가 항상 함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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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클레시아의 성장

2019. 11. 17. 15:07 | Posted by 소망지기

 

2019. 11. 17. 주일 오전예배

본문 : 에베소서 4:15-16

 

'에클레시아'(교회)와 예수님과의 관계를 사람의 몸으로 비유합니다(참고, 엡1:22-23, 골1:18). 예수님을 머리로하고 믿는 자들을 그 몸을 이루는 자체로 표현하는 것은 에클레시아가 살아있는 유기체임을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교회가 살아있다는 것은 성장한다는 의미인데(15절), 교회와 신앙이 성장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또한 어떻게 하면 성장할 수 있을까요?

1. 예수님과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15절에 '연결되고'는 머리인 예수님과 연결을 의미합니다. 사람의 기능도 뇌와 연결될 때 건강한 활동이 보장되듯이, 신앙의 성장도 예수님과 긴밀한 연결이 되어야 합니다. 안타까운것은 예수님과의 '연결됨'을, 교회나 목회자나 어떤 봉사 활동으로 생각하여 이런 일에 열심히 참여하는 거싱 곧 예수님과의 '친밀함'과 '연결'로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2. 지체들과 '결합'되어 있어야 합니다.
'결합되어'란 지체간의 유기적인 관계형성을 의미합니다. 건강하게 성장한다는 것은 어느 특정부회의 기능만이 활발하게 작동된다고 건강한 것은 아닙니다. 모든 기관이 각기 그 기능를 발휘할 때 건강한 강태가 되듯이, 신앙의 건강도 지체를 이루는 각 사람들과 유기적인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여러 직분과 은사를 주셨습니다(엡4:!1-12).

3. 각자의 기능으로 '역사'해야 합니다.
'분량대로 역사'란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 보다는, 각자 가진 기능에 맞는 역할로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역사'(에네르게이아)란 단순한 '일이나 봉사'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능력이 밖으로 나타나는 현상들을 통칭하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이 주신 능력으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모든 사역을 의미합니다. 일의 결과보다는 일의 원인과 동기가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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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클레시아의 감사

2019. 11. 10. 15:10 | Posted by 소망지기

 

2019. 11. 10. 주일 오전예배

본문 : 데살로니가후서 2:13-15

 

'추수감사절'은 미국의 청교도들에 의해 유래한 것이고 성경적인 용어는 '초막절'입니다. 그래서 성경적인 감사절의 의미는 미국적인 '추수'에 대한 감사보다는 '초막'에 대한 감사에 있습니다. '초막절'은 추수를 끝내고 40년 광야생활을 부족함 없이 인도하신 하나님을 생각하며 감사하는 날입니다(레23:42-43). 즉 광야의 일상을 인도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여전히 지금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1. 하나님의 택하심에 감사해야 합니다(13절 상반절).
'택하다(헬: 하이레오마이)'는 임의적으로 선택했다는 의미보다는 선택하기 위해 심사숙고 했다는 의미가 더 강한 단어입니다(참고, 빌1:22, 히11:25). 이 말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택함을 받았다는 것은 우연한 기회에 예수님을 믿게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한 택하심으로 되었기에 항상 감사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하나님의 구원에 감사해야 합니다(13절 하반절).
구원이 단순히 죽어서 천국가는 것만이 아니라, '성령의 거룩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았더라도 본인이 그것을 망각하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구원의 의미를 깨닫고 성령과 진리(요4:24)로 예배자의 삶을 산다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 항상 감사할 조건입니다.

3. 하나님께 쓰임 받음에 감사해야 합니다(14-15절).
바울은 '우리의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신'분은 '주님'(13절 '주께서')이고 자신들은 그리소도가 영광을 얻도록 쓰임받고 있음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울 뿐만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모든 성도들을 사용하십니다. 크든 작든, 유명하든 그렇지 못하든 모든 성도들을 귀하게 사용하기에 우리는 이렇게 쓰임받음을 알고 감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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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클레시아의 사명

2019. 11. 3. 10:32 | Posted by 소망지기

 

2019. 11. 03. 주일 오전예배

본문 : 에스겔 37:24-28

 

교회의 사명은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바른 대답이 곧 바른 신앙인이자 신앙공동체의 모습일 것입니다. 신약시대의 교회와 구약시대의 이스라엘은 동일하게 하나님이 택하여 세우신 신앙 공동체로서의 '에클레시아'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신구약 성경을 통해 한결같이 목적하신 분명한 뜻이 있습니다. 오늘은 에스겔 선지자를 통한 신앙 공동체('에클레시아')에 주신 하나님의 사명은 무엇인지를 살펴봅시다.

1. 이스라엘은 에클레시아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통해 '큰 민족'을 이루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창28:3, 35:11, 48:4). 이 '민족'을 히브리어로 '카할'이라고 하는데 '회중' '총회' '무리'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 단어를 기원전 270년 경에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할 때 '에클레시아'로 번역하였습니다. 이스라엘민족이 곧 구약시대의 에클레시아였습니다.

2. 무너진 에클레시아에 주시는 소망이 있습니다.
에클레시아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자 하나님이 심판하여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게 됩니다. 포로 중에 있던 에스겔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다시 에클레시아로서 회복시킬 것을 약속합니다. '다윗 왕' '화평의 언약' '성소' 등은 다시 회복될 신앙공동체를 상징하는 용어들입니다. 이 용어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3. 에클레시아의 사명은 이것입니다.
다시 회복될 신앙공동체의 사명은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27절)입니다. 37장의 마른 뼈들의 환상이나 40장의 새로 회복될 성전의 환상은 모두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소개하는 내용들입니다(6절, 13-14절, 23절). 따라서 에클레시아의 사명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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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클레시아의 길

2019. 10. 27. 10:57 | Posted by 소망지기

 

2019. 10. 27. 주일 오전예배

본문 : 고린도전서 9:16-23

하나님의 에클레시아로서 신앙생활하기 위해서는 분명한 성경적인 지식과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단순히 교회에 등록하고 교회생활하는 것이 곧 신앙생활일 수는 없습니다. 개개인이 에클레시아로서, 또한 공동체적인 에클레시아로서 분명히 나아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사도바울을 통해 초기 에클레시아인들의 신앙을 들여다보면서 오늘날의 신앙풍토와 각자의 신앙모습을 점검하고 도전받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1. 교회는 복음이다(16-18)
예수님은 '몸은 교회의 머리'(골1:18)로서 교회의 근본입니다. 따라서 교회가 교회의 기능을 바르게 행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이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행하도록 세우신 공동체입니다. 이에 따라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사모하고 묵상하며 삶의 변화를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2. 교회는 나눔이다
'나눔'이란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라 '에클레시아에서 결정된 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이런 복음적인 나눔에는 잘못된 신앙지식을 책망하고 바르게 가르치는 훈계도 포함됩니다. 바른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에클레시아로서 합당한 삶을 살도록하는 시간과 물질과 복음의 헌신적인 나눔의 삶이 바로 에클레시아가 가야 할 길입니다.

3. 교회는 사람이다(19-23)
신앙의 근본이 하나님이시기에 교회는 성도들에게 이러한 영적지식을 가르치기위해 사람들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역사를 보면 중세의 '바실리카', 독일의 '키르케', 미국의 '처치(Church)'로 의미가 전달되면서 사람이 아닌 건물이 중요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교회건물은 성도들을 위한 예배처소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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