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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밀이 크도다

2020. 8. 2. 12:41 | Posted by 소망지기

 

 

2020. 08. 02. 주일 오전예배

본문 : 에베소서 5:31-33

제목 : 이 비밀이 크도다


*** 음성이 녹음이 안 되어 영상을 삭제했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


바울은 5:22부터 6:9까지 가정 안에서 부부관계, 자녀관계, 종의 관계에 대한 신앙적인 권면을 주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 부부관계에 대한 가르침을 통해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경적인 남편과 아내의 관계 속에 담긴 비밀이 바로 예수님과 교회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참된 부부관계 속에 있는 참된 교회관은 무엇일까요?

1. 교회는 질서 공동체입니다(5:22-24)
가정에서 남편의 역할과 아내의 역할이 구별되어 있어야 질서가 생깁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성실하게 맡은 역할을 감당해야 가정이 건강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도 각자에게 맡겨진 역할과 기능이 구별되어야 질서가 있습니다. 이 질서는 하나님의 경륜 속에서 이루어지는 심리적 질서이며, 세상적인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은사가 기준입니다.

2. 교회는 사라의 공동체입니다(5:25-30).
남편은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은 단순히 인간적인 사랑이 아닙니다.예수님처럼 '자신을 주는' 사랑을 해야 합니다(25절). 그렇다면 예수님이 교회에 베푸시는 사랑이란 어떤 사랑일까요? 인간적인 사랑을 넘어 말씀과 은혜로 날마다 정결하고 거룩한 믿음의 삶으로 인도하는 사랑입니다(26-27절). 교회는 인간적인 사랑과 배려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믿음과 은혜로 교제하는 사랑을 해야합니다.

3. 교회는 연합의 공동체입니다(5:31-33).
부부가 '그 둘이 한 육체'가 되듯이 교회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로 연합하기 위해서는 먼저 '떠나'야 합니다. 부부가 각자의 삶의 영향력에서 떠나 서로에게 맞추어 가며 살듯이 교회도 세상적인 관점이나 경험에서 떠나 그리스도에 맞추어 사는 사람들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경험에서 '떠나온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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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나비효과

2020. 7. 26. 12:38 | Posted by 소망지기

 

 

2020. 07. 26. 주일 오전예배

본문 : 출애굽기 1:15-22

제목 : 영적 나비효과




'나비효과'란  보잘것없이 사소한 사건이 나중에는 엄청난 효과를 가져오는 현상을 일컫는 말입니다. 신앙에서도 처음에는 사소하고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나중에 그 결과는 상상을 초월하게 만드는 '영적 나비효과'가 있습니다. 출애굽의 대 구원역사가 모세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평범한 두 여인의 나비효과임을 기억해야합니다.

1. 하나님의 역사에 헌신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의 서막을 여는 출애굽기의 시작은 고통스러운 애굽생활을 그리고 있습니다(참고, 출1:1-14). 지도자 모세가 등장하기(출 2장) 전에 십브라와 부아라는 산파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바로의 명령을 거절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모세가 등장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모세는 두 여인의 '나비효과'입니다.

2. 생명을 살리는 일에 헌신합시다.
두 산파는  애굽의 바로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함과 경외하는 사람이기에 바로의 명령을 거역하고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살리는 일에 헌신합니다. 바로라고 하는 두려움의 존재보다 생명을 더 소중히 여길 때 그 생명들이 바로 '나비효과'입니다. 성경에는 육적인 생명보다 더 중요한 생명이 있습니다. 바로 영적인 생명입니다. 복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주는 일은 세상의 어떤 일보다 훨씬 보람된 사역입니다. 영적생명을 살리는 일에 헌신합시다.

3. 순종함으로 헌신합니다.
상황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많은 산파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중 산파의 대부분은 바로의 명령에 순종했겠지만, 십브라와 부아만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습니다. 그 일이 발각되어 바로 앞에 서게 되는 위기(18절) 앞에서도 꿋꿋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합니다. 현재의 순종이 고통스럽지만, 오랜 후에는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는 '나비효과'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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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2020. 7. 19. 12:30 | Posted by 소망지기

 

 

2020. 07. 19. 주일 오전예배

본문 : 누가복음 17:5-10

제목 : 나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신앙생활의 가장 기본은 '믿음'입니다. 그런데 이 '믿음'은 우리의 의지대로 크게 하거나 작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나 큰 믿음으로 많은 일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루어 드리고 싶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큰일을 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예수님의 말씀에서 그 해답을 찾아봅시다.

1. 내용의 배경(5절).
1절의 상황('예수께서 제자들에게...')과 5절의 상황('사도들이...')은 서로 다른 사건입니다. '제자'는 말 그대로 스승에게서 배우는 사람의 의미이지만, '사도'는 '보냄을 받은 자'로서 제자들이 어떤 사역을 하러 갔다가 기대한 결과를 얻지 못하고 낙심하고 돌아와 예수님께 푸념하면서 '큰 믿음을 주세요'하는 상황입니다. 큰일을 할 수 있는 믿음이란?

2. 겨자씨의 비유(6절).
'큰 믿음'을 구하는 제자들에게 첫번째 비유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이 '겨자씨'입니다. '겨자씨'가 작은 것의 상징이라면, '뽕나무'는 뿌리가 깊이 박히는 식물의 상징입니다. 이 두가지 대비적인 비유를 통해 '큰 믿음'이란 외적인 모양이나 능력이 아니라, 내적인 생명력에 있음을 말씀합니다. 세상이 기대하는 '큰일', '큰 능력', '많은 결과'가 아니라, 비록 작고 보잘것없더라도 내 안에 예수의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큰 믿음임을 말씀합니다.

3. 종의 비유(7-10절).
두번째 비유는 '종'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종은 노예로서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한 평가를 자기 스스로 할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저 주인의 명령에 순종하는 존재입니다. 이러한 종의 모습을 상기시키면서 '일의 결가'보다 '일하는 태도'를 말씀합니다. 즉, '큰 믿음'이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앞에 겸손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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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무지를 벗어라

2020. 7. 12. 12:41 | Posted by 소망지기

 

 

2020. 07. 12. 주일 오전예배

본문 : 마가복음 9:23-29



초대교회의 지도자들의 가르침은 크게 두가지 내용입니다. 먼저는 예수님이 구약의 말씀을 다 이루셨다는 것과 예수님이 선포하신 복음의 말씀들입니다. 이런 내용을 듣고 배우고 그대로 전했습니다('파라티데미'). 그런데 오늘날의 성경 이해는 말씀 중심이 아닌 듣는 사람들의 상황과 형편 중심으로 변질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변질되고 있을까요?

1. 사건의 배경(14-22절).
변화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은 제자들이 말 못하는 귀신들린 아이를 놓고 변론하는 것을 봅니다. 문제는 제자들이 귀신을 쫒아내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탄식하며 '믿음이 없는 세대여'라고 하시며 아이의 아버지에게는 '믿는 자에게는 못할 일이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어떤 믿음을 말씀하는 것일까요?

2. 능력보다 믿음이 우선입니다(23절).
'믿음'이 마치 도깨비방망이처럼 이해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믿음'은 단순히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자기 아들의 문제에만 매여있는 아버지에게 요구하는 믿음은 하니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함입니다. 문제해결의 능력보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먼저 구할 때 기적은 믿음을 따라 나타납니다. 따라서 '믿음'의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3. 기도를 부탁하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29절).
문제해결을 못 한 이유에 대한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기도'입니다. 제자들은 문제를 놓고 '변론'하기에 바빴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문제를 놓고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성경은 한번도 기도를 '부탁하라'는 말은 없고, 항상 '기도하라'는 말씀으로 가득합니다. 이는 곧 기도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문제해결의 능력을 누릴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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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위기와 맞서는 신앙

2020. 7. 5. 12:39 | Posted by 소망지기


[오늘 영상 녹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2020. 07. 05. 주일 예배

본문 : 디모데전서 4:6-11

제목 : 세상 위기와 맞서는 신앙


코로나19를 경험하는 시대에 '장로'에 관한 메시지는 단순히 교회의 직분이나 봉사에 관한 내용이 아닙니다. '장로'라고 하는 성경적인 직분은 개인적인 신앙의 성숙이요, 교회적인 신앙개혁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신앙인들은 세상과 신앙적 위기 속에서 어떻게 이를 극복하며 하나님나라를 세워가는지를 본문을 통해 살펴봅시다.

1. 말씀과 교훈으로 양육해야 합니다(6절).
에베소교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안정을 회복하기 위해 파견된 디모데에게 가장 먼저 부탁하는 것은 바른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참고, 1:3-4). 일반적으로 어떤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에 집중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문제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모든 선택과 판단이 말씀을 기준하기 때문입니다.

2. 경건을 위해 연단해야 합니다(7절).
경건이란 하나님의 뜻에 집중하고 순종하며 사는 생활입니다. 그런데 에베소교회 안에는 여러 가지 이론과 주장으로 인해 분열과 다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디모데에게 권면하는 것은 경건한 삶을 살도록 끊임없이 훈련하고 연습하라고 합니다. 3장의 감독과 집사의 자격을 교회 밖의 삶의 영역까지 확장시키고 있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3. 소망을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10절).
이러한 모든 사역의 수고와 헌신의 목적은 성도들로 하여금 소망을 하나님께 두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세상의 위기 앞에서 두려워하는 이유는 세상 속에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사람은 세상의 형편에 연연하지 않게 됩니다. '장로'라는 직분은 이처럼 경건한 삶을 위해 수고하며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배우고 가르쳐서 성도들을 세우고 교회를 확장시키는 가장 능력있는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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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지고 뺴앗긴 사람들

2020. 6. 28. 12:38 | Posted by 소망지기

 

2020. 06. 28. 주일 예배

본문 : 디모데전서 5:17

제목 : 잊혀지고 빼앗긴 사람들



교회의 리더십에 관하여 성경에서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시대적 변화'라는 이름으로 성경의 가르침과 상관없이 무조건적으로 수용되고 전통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날의 장로제 교회는 오늘 본문을 기초로 하여 목사는 '가르치며 다스리는 장로', 장로는 '다스리는 장로'라는 개념으로 교회조직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다스리고 가르치는' 리더십의 의미에 관해 살펴봅시다.

1. 장로제의 기원.
종교개혁을 선도한 루터는 가톨릭교회의 사제들의 역할에 대응하는 '목사(엡4:11)'를 교회 지도자로 세웠습니다. 칼빈은 오늘 본문을 근거로 하여 목사와 함께 일반 성도들도 사역에 동참할 수 있도록 개방하였고 성도들의 대표성을 가진 지도자로 '장로'를 세웠습니다. 이런 결정은 부패한 가톨릭교회에 대한 의식적인 '개혁의지'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2. 초대교회의 장로.
바울은 교회를 개척하고 각 교회에 장로들을 세웠습니다. 성경에 장로가 세워진 교회로 소개되는 곳은 예루살렘교회(행15:4), 갈라디아서교회(행14:19-23), 에베소교회(행20:17), 빌립보교회(빌1:1), 그레데교회(딛1:5), 그리고 이름없는 많은 교회들이 있습니다(약1:1, 5:4, 벧전1:1, 5:1). 그런데 장로가 세워진 교회들에 문제가 있어 편지를 쓸 때 수신자가 장로가 아닌 일반 성도들입니다(참고, 갈1:1-2, 엡1:1, 빌1:1).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3. 교회 지도자의 자세.
장로들이 세워져 있음에도 장로들을 통해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온 성도와 교회 앞으로 편지를 쓴 데는 장로들에 대한 깊은 신뢰감과 함께 장로도 여전히 성도요 교회로서 바른 가르침을 배워야 할 사람이며, 성도들을 '다스림' 보다는 '섬기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시대 속에서 잊혀지고 빼앗긴 이런한 교회 지도자들을 되찾을 때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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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잊은 사람들

2020. 6. 21. 12:33 | Posted by 소망지기

 

2020. 06. 21. 주일 예배

본문 : 베드로전서 5:1-4

제목 : 하늘을 잊은 사람들



상황과 여건에 따라 살다 보면 원래의 모습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게 생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신앙적으로도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대적 요인에 따라 조금씩 벼화되다가 결국은 성경과는 상반된 모습으로 변질되는 일이 있습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장로의 모습을 살펴보고, 교회와 성도들에게 어떤 회복이 필요한지 생각해 봅시다.

1. 사도와 장로의 관계(1절).
사도인 베드로(참고, 벧전1:1)는 각 교회의 장로들에게 자신의 직분을 '장로'(1절)라고 칭합니다. 이런 점은 사도 요한에게서도 동일하게 발견됩니다(참고, 요이1:1, 요삼1:1). 예수님의 제자로서 복음을 위해 '보냄을 받은' 사도라는 특별한 신분이 아니라, 일반적인 신분인 '장로'라고 칭하는 데는 '장로'가 가진 특별하고도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2. 장로의 역할(2-3절).
사도행전에서 바울이 각 교회에 장로들을 세울 때도 마찬가지지만, 베드로도 장도들이 각 교회에서 성도들을 보살피고 양육하는 신앙의 지도자로 여기고 있습니다(2-3절). 즉, 사도들은 한 교회에 머물며 목회하기보다는 순회하면서 교회개척에 집중했다면, 장로들은 한 교회에 머물며 성도들을 보살피는 '목회자'와 같은 사역을 감당하였습니다.

3. 장로의 축복(4절).
중세 로마가톨릭의 사제 계급의 만행에 반발해서 시작된 종교개혁과 그 선구자들은 의도적으로 가톨릭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교회체계를 세웠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장로를 단순히 성도들의 대표로서 목사의 전횡을 방지하는 개념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장로가 영원한 '영광의 관'을 누릴 존귀한 직분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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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되어야 할 에클레시아

2020. 6. 14. 12:41 | Posted by 소망지기

 

2020. 06. 14. 주일 예배

본문 : 사도행전 20:28-35

제목 : 회복되어야 할 에클레시아



앞으로 다가올 위기를 대처하는 교회의 모습을 초대교회에서 찾는다면, 하나의 대형 교회가 아니라 작지만 유기적인 소규모의 '에클레시아'에서 그 원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각각의 '에클레시아'에서 장로를 지도자로 세웠습니다. 어떻게 이들을 양육하고 가르쳤으며 어떤 헌신을 요구했을까요? 예루살렘을 향해 가는 도중에 에베소교회의 장로들을 만나 권면하는 본문을 통해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함께 고민해 봅시다.

1. 삼가야 합니다(28절).
교회를 맡은 지도자는 공인의 신분이 되었으므로 사사로이 행동해서는 안됩니다. '삼가라'는 의미는 경계하고 주의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교회의 일꾼으로 세웠기에 자기 자신의 영적 성장을 생각해야 하고, 성도들을 생각해야 하고, 또한 가장 중요한 하나님이 세우심에 헌신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자기절제와 자기부인의 신앙이 필요합니다.

2.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31-32절).
29-30절에서 교회의 외부와 내부에서 이단과 미혹이 생겨날 것을 예언합니다. 이러한 신앙의 미혹과 변질을 방지하는 방법이 바로 말씀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로들을 '은혜의 말씀에 부탁(헬:파라티데미)'했습니다. 이는 모든 사역의 기준이 각 장로가 가진 능력이나 학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있음을 분명히 합니다.

3.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33-35절).
지도자로서 개인적인 영역의 신앙을 벗아나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선한 영향력을 미쳐야합니다. 특히 본문에서 언급하는 내용은 '경제적인' 영역을 강조합니다. 지도자는 물질적으로 성도들에게 부담을 주기보다는 '나눔'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성경적 경제관으로 '나눔'은 지출이 아닌 수입의 개념으로 '나눔'이 곧 행복임을 깨달아야 합니다(참고, 눅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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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교회

2020. 6. 7. 12:41 | Posted by 소망지기

 

2020. 06. 07. 주일 예배

본문 : 사도행전 14:19-28

제목 :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교회



코로나19로 인하여 파생된 변화의 물결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의 일상에 엄청난 변화를 줄 것입니다.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교회는 어떤 모습으로 변화해 갈까요? 지금까지 행해오던 그 모습을 유지하면서 발전해 갈 수 있을까요? 분명한 것은, 시대적 변화와 도전 앞에서 교회는 항상 성경적 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위기 앞에서 보여준 초대교회의 모습을 통해 앞으로 한국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생각해봅시다.

1.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바울은 1차 선교 여행을 통해 세워진 교회에 장로들을 택하여 세웠습니다. 이 장로들은 전도를 받아 믿게 된 '제자들' 중에서 택한 것으로 볼 때 신앙적으로나 신학적으로 깊은 영성을 소유했다기보다는 신앙적인 헌신과 지도자로서의 인격을 갖춘 사람으로 여겨집니다. 위기 속에 세워진 교회에서 필요한 것은 바로 헌신된 지도자입니다.

2. '금식 기도하며'
장로를 택한 후 이어지는 것이 '금식기도'입니다. 초대교회시대의 금식기도는 하나님께 전적인 의탁과 순종의 의미를 가집니다(참고, 행 13:2-3). 즉, 교회를 섬기는 장로로 택함을 받았다는 것은 자신의 능력이나 지혜로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뜻과 섭리 속에 순종하겠다는 결단입니다. 위기 속에 세워진 교회에 필요한 것은 기도입니다.

3. '주께 그들을 위탁하고'
'위탁(헬:파라티데미)'이란 제한적 위임으로 주어진 가른침을 따라서 교회를 섬기도록 원위를 부여했다는 뜻입니다. 반면에, 26절의 '부탁(헬:파라디도미)'이란 의미는 전적인 위임으로써 할 수 있는 모든 권리를 부여함을 뜻합니다. 장로들에게 교회를 섬기도록 위탁함으로써 사도들의 가르침을 따라 순종하며 섬기는 사역으로 교회를 세워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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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후의 교회

2020. 5. 24. 12:37 | Posted by 소망지기

 

2020. 05. 24. 주일 예배

본문 : 데살로니가후서 2:1-2

제목 : 코로나 이후의 교회



코로나19가 일으키고 있는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 영향은 가히 가공할만한 파급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코로나 이후의 변화에 대하여 예상하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이후의 교회는 어떤 모습일까요? 생경했던 비대면, 온라인 예배가 익숙해지는 상황에서 앞으로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그 방향은 항상 성경이 말씀하는 방향이어야 합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가장 확실한 교회의 모습은?

1. '모임'에 대한 여러 가지 이론들이 등장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앞에 '모임'(헬: 에피수나고게)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등장할 것을 말씀합니다. 그러나 이런 이론이나 이야기로 인해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그 이유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미혹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과 다른 복음은 곧 마귀의 미혹이기 때문입니다.

2. '받은 전통'을 지켜야 합니다(2:15).
'모임'에 대한 여러 가지 이론들이 존재하지만 결국은 15절에서 결론은 '받은 전통을 지키'는 것입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전통은 무엇입니까? 믿음의 사람들이 함께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배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편지를 읽는 삶들도 데살로니가 교회에 있는 사람들입니다(참고, 1:1). 따라서 어떤 상황에서도 함께 공적인 예배를 드리라른 것입니다.

3. 모이기에 힘써야 합니다(참고, 히10:25).
모이기에 힘써야 합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의 과제는 무엇일까요? 모일 수 없는 상황에서도 모여 예배할 방법을 연구해야 합니다. 중국의 지하교회는 공산정권의 탄압으로 모일 수 없는 상황이지만 계속 모임으로 수많은 사람을 구원시키고 있습니다. 앞으로 교회가 고민해야 할 일은 끊임없는 공적예배, 다중예배, 지역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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