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경기도 김포시 양촌읍 김포한강4로 278번길 7-15(석모리 882-2) 교회 031-996-9100 목사님 010-2500-2004 e-mail : jaekimpst@gmail.com 선교후원 : 농협 301-0068-4817-81
소망지기

태그목록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에클레시아의 세 가지 기초

2022. 11. 13. 12:23 | Posted by 소망지기

 

2022.11.13. 주일오전예배
본문 : 갈라디아서 3:1-6
제목 : 에클레시아의 세 가지 기초

 

 

갈라디아서는 바울이 가장 먼저 쓴 편지로서 교회가 세워지는 초기의 상황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입니다. 바울이 전도하면서 세워진 교회들이 어떤 가르침 속에서 신앙생활하고 있었으면, 초기 기독교인들이 가진 신앙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알려줍니다. 교회 안팎의 여러가지 이단 사상에 미혹되고 있는 상황에서 교회가 세워진 세 가지 핵심에 대하여 언급하는데, 오늘날의 교회와 에클레시아가 깊은 울림으로 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1. 십자가.
그리스-로마 사회에서 십자가는 범죄자를 사형시키는 형벌이었지만, 예수가 십자가에 죽으신 이후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구원의 상징이자 예수를 따르는 삶의 상징이 되었습니다(참고, 2:20). 즉, 초대교회는 예수그리스도가 구원의 주인임과 이런 예수를 믿고 따르는데 수반되는 어떤 고난이나 고통도 다 감수하겠다는 고백으로 모인 공동체였습니다.

2. 성령.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성령을 이미 '받았음'을 전제하고 있습니다(2, 3, 5절). 성령을 받았다는 것은 어떤 신령하고 신비로운 체험이 아니라, 예수로 말미암는 삶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예수를 모르고 살던 '육적인 삶'(참고, 5:19-21)에서 성령으로 인하여 변화된 삶(참고, 5:22-23)을 사는 것이 에클레시아의 중요한 가치였습니다.

3. 믿음.
이방인들로 구성된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믿음'을 '율법의 행위'와 비교하고 있습니다(2, 5절). 믿음은 정기적이고 규칙적인 행위를 요구하는 율법과는 달리,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에서의 헌신과 순종의 자세입니다. 이런 믿음의 대표적인 예를 아브라함으로 들고 있습니다(6절). 따라서 에클레시아는 하나님과 인격적인 믿음의 관계에서 시작합니다.

'주일예배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클레시아의 세 가지 기둥  (0) 2022.11.20
구약성경에 '감사'란 단어가 없는 이유  (0) 2022.11.06
광야 에클레시아  (0) 2022.10.30

구약성경에 '감사'란 단어가 없는 이유

2022. 11. 6. 12:19 | Posted by 소망지기

 

2022.11.06. 주일오전예배
본문 : 시편 136:1-3
제목 : 구약성경에 '감사'란 단어가 없는 이유

 

 

추수감사절이 '추수'에 대한 감사라면 추수한 것이 없는 사람은 감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일까요? 추수감사절을 맞이하면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추수'한 것에 대한 감사라고 한정하기보다는 근원적인 '감사'를 드리는 예배가 되길 바랍니다. 추수감사절이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에 의해 유래된 것이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진정한 감사의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1. 히브리어에는 '감사'란 단어가 없다.
히브리어에는 '감사'란 단어가 없습니다. 손('야드')에서 파생되어 '던지다' '쏘다'란 의미를 가진 '야다'(명사형은 '토다')란 단어를 빌려 '손을 들다' '찬야하다' '고백하다' '감사하다'는 의미를 전달합니다. 이런 점 때문에 구약성경에서 말하는 '감사'와 오늘날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감사'의 의미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존재에 감사.
시편 136편은 절마다 '감사(야다)'란 말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히브리어 '야다'는 '여호와' '하나님' '주'가 주어인 1, 2, 3절과 26절에서만 사용됩니다. 그 이유는 구약의 성도들은 감사할 제목이나 이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존재 자체를 더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존재 자체가 감사할 유일한 이유입니다.

3. 하나님을 알고 깨닫게 됨에 감사.
4절부터 25절까지 감사의 이유는 하나님에 관한 깨달음을 고백하면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게 된 것에 감사합니다. 오늘날의 감사는 '하나님이 나에게 무슨 좋은 것을 주셨는가'로 결정되지만, 구약성경에서는 나에게 '좋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게 된 것에 감사합니다. 그래서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참고, 살전5:18).

'주일예배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클레시아의 세 가지 기초  (0) 2022.11.13
광야 에클레시아  (0) 2022.10.30
행동하는 한 사람  (0) 2022.10.23

광야 에클레시아

2022. 10. 30. 12:14 | Posted by 소망지기

 

2022.10.30. 주일오전예배
본문 : 사무엘상 23:15-18
제목 : 광야 에클레시아

 

 

다윗을 죽이려는 아버지 사울의 마음을 알고 요나단은 다윗과 눈물의 작별을 고합니다(참고, 20:41-42). 그러나 다윗의 상황이 더욱 악화되어지는 것을 보고 광야 깊은 곳까지 찾아가서 위로와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이것을 위해 하나님이 사용하는 것이 바로 '사람'입니다. 교회(에클레시아)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도록 협력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1. 하나님을 힘있게 의지하도록 위로.
사람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으므로 불안하고 두려워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믿음의 사람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믿음의 회복이 가장 중요하고 우선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직면한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기보다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신뢰의 회복을 위해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이 에클레시아입니다.

2. 현실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권면.
믿음의 반대말은 불신앙이 아니라 두려움입니다. 다윗은 거인 골리앗과도 싸워 이길 정도의 믿음의 사람이었는데 사울의 추격에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과의 믿음의 관계에 문제가 생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럴 때 믿음의 동역자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에클레시아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주는 믿음의 동역자가 모인 곳입니다.

3.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소망.
왕이 되려는 것은 다윗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현실은 왕이 되기보다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도 버거운 상황입니다. 이럴 때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현실 상황과 관계없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소망은 다윗을 다시 일어나게 했습니다. 에클레시아는 낙심과 절망 중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말씀의 소망을 줍니다.

 

'주일예배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약성경에 '감사'란 단어가 없는 이유  (0) 2022.11.06
행동하는 한 사람  (0) 2022.10.23
눈을 들어 밭을 보라  (0) 2022.10.21

행동하는 한 사람

2022. 10. 23. 12:25 | Posted by 소망지기

 

2022.10.23. 주일오전예배
본문 : 사무엘상 14:6-7
제목 : 행동하는 한 사람

 

 

모두 숨죽이고 있을 때,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을 때, 기도해도 응답이 없고, 말씀을 듣고 읽어도 감동이 없을 때, 그러나 상황은 점점 어려워져 갈 때 성도들은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까요? 사울이 블레셋과 전쟁할 때 진퇴양난의 상황에다가, 사무엘 선지자로부터 책망까지 받은 상태였습니다(참고, 13:13-14). 이런 상황을 반전시킨 사람은 바로 그의 아들인 요나단이었습니다. 요나단이 보여준 믿음의 모습을 함께 살펴봅시다.

1. 행동하는 한 사람(6-7절).
이스라엘 백성은 다 흩어지고 남은 600명으로 수많은 블레셋 군대를 상대해야 할 사울은 자기 안전에만 신경 쓰고 있습니다(참고, 2절). 이때 요나단은 비록 혼자지만 하나님의 구원을 믿고 적진으로 달려갑니다. 그 결과 20명 정도의 적군을 죽이는데(참고, 14절), 이 여파로 전쟁의 승기를 잡게 됩니다. 걱정만 하지 말고 믿음으로 헌신해야 합니다.

2. 숨겨진 사람들(20-21절).
이스라엘과의 전쟁을 앞두고 블레셋 영토에 살던 이스라엘 사람들도 강제로 징집되어 전장에 오게 되었습니다. 동족과 상대로 싸워야 할 이들이 요나단의 모습을 보고 도전받아 오히려 블레셋 군인들과 싸우게 되었습니다. 우리 눈에는 다 적군으로 보이지만 믿음의 헌신을 하게 되면 하나님이 숨겨 놓은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함께 일하게 하십니다.

3. 숨은 사람들(22-23절).
이런 상황을 도망가 숨어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보다가 다시 돌아와 함께 싸움으로 결국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현 상황만 보면 혼자지만, 순종하여 헌신하면 숨어 있던 사람들에게도 감동과 도전을 주어 삶과 신앙의 회복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결국, 요나단 한 사람이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변화시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주일예배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광야 에클레시아  (0) 2022.10.30
눈을 들어 밭을 보라  (0) 2022.10.21
바울의 아픈 손가락  (0) 2022.10.09

눈을 들어 밭을 보라

2022. 10. 21. 22:11 | Posted by 소망지기

 

2022.10.16. 주일오전예배
본문 : 요한복음 4:35
제목 : 눈을 들어 밭을 보라

'주일예배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행동하는 한 사람  (0) 2022.10.23
바울의 아픈 손가락  (0) 2022.10.09
신앙성숙의 내적 결실  (0) 2022.10.02

바울의 아픈 손가락

2022. 10. 9. 12:27 | Posted by 소망지기

 

2022.10.09. 주일오전예배
본문 : 고린도후서 2:4
제목 : 바울의 아픈 손가락

 

 

2차 선교 여행 중 고린도에 도착한 바울은 1년 6개월을 머울면서 교회를 개척하고 떠났습니다(참고, 행18장). 그런데 고린도 교회의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하여 바울은 여러 차례 편지를 보냈고(고전5:9), 사람을 보냈고(고후9:3), 자신도 몇 번 다녀올 정도로 남다른 애정을 쏟았습니다(고후13:1). 그 이유는 가장 특별하게 여긴 고린도 교회가 바울에게는 가장 아픈 손가락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점들이 바울을 아프게 하는 손가락일까요?

1. 자기애적 우월주의(고전 1:17).
고린도전서 1장에서 교회의 분열 상태를 언급하면서 바울이 베푼 세례에 대하여 언급하는데 그 이유는 바울의 세례가 분열의 한 원인으로 작용했습니다. 바울에게서 세례받은 사람들은 자신이 받은 세례가 가장 가치있다고 여겼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어떤 사람의 경력도 자랑할 것이 못 된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치고 있습니다(참고, 고전1:29-31).

2. 주관적 지식주의(고전 2:6-8).
고린도 지역은 상업과 학문이 발달한 곳으로 바울이 전한 복음을 하나님의 지혜가 아닌 인간이 가진 지식과 지혜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이에 바울은 인간의 지식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고 말합니다. 자신이 가진 지식으로 이해하고, 자신이 경험한것이 전부인 것처럼 주장하는 일부의 교인들이 바울에게는 아픈 손가락들이었습니다.

3. 영적 엘리트주의(고전 3:1).
'신령한 자'(헬: '프뉴마티코스')란 말은 바울 서신에 24번 사용되었는데 고린도전서에서만 15번 사용될 정도로 영적인 은사가 풍성한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들을 향해 어린 아이들로 취급하겠다고 합니다. 영적인 삶이 단순히 성령의 은사를 나타내고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이루며 영광 돌리는 신실한 삶이기 때문입니다.

 

'주일예배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눈을 들어 밭을 보라  (0) 2022.10.21
신앙성숙의 내적 결실  (0) 2022.10.02
침묵의 십년  (0) 2022.09.25

신앙성숙의 내적 결실

2022. 10. 2. 12:28 | Posted by 소망지기

 

2022.10.02. 주일오전예배
본문 : 에베소서 3:7-9
제목 : 신앙성숙의 내적 결실

 

 

에베소서는 바울의 사역 후반기에 로마 감옥에 갇혔던 시기에 쓴 옥중서신입니다. 사역중에 틈틈이 쓴 바울의 편지에는 사역 초기의 자신감으로 가득한 열정에서부터 사역 후반기로 오면서 보다깊고 풍성한 노사역자의 영적 성숙과 그 결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갖은 역경을 이겨내면서 걸어 온 바울의 인생을 통해 성도들이 신앙적으로 성숙해지고 그에 따른 열매를 맺는다면 어떤 모습일지를 오늘 본문을 통해 생각해 봅시다.

1. 긍정(7절).
바울은 감옥에 갇혀 미래가 보이지 않는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자기가 하나님의 '일꾼'임에 큰 자부심이 있습니다. 현 상황이 주는 아픔이나 무게에 눌리지 않고 그러한 상황까지 모두 수용하면서 오히려 더 담대히 자기 삶에 대한 가치를 자랑합니다(참고, 13절). 신앙이 무르익을수록 살아온 모든 삶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게 됩니다.

2. 겸손(8절).
초기 바울의 편지를 보면 자신감 넘치는 청년이었습니다(참고, 행9:26, 갈2:11-14).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겸손하고 남을 낫게 여기는 모습으로 변모합니다(참고, 고훕12:1-2, 딤전1:13). 겸손은 자격을 갖춘 사람이 자신의 권리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래서 겸손의 전제는 자격을 갖추는 것인데 안타깝게도 대부분 자격을 가지려다 교만에 빠지고 맙니다.

3. 갈망(9절).
경륜이란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로서 늘 새롭고 예측 불가한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오랜시간 쌓아 올린 자기 업적이나 결과물에 만족하기보다는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뜨거운 갈망을 고백합니다. 에베소 교인들을 위한 기도도 오직 한가지 예수님의 더욱 깊이 아는 것이었습니다(참고, 15-19절). 결국, 가장 아름다운 결실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주일예배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울의 아픈 손가락  (0) 2022.10.09
침묵의 십년  (0) 2022.09.25
나의 마지막 고백  (0) 2022.09.18

침묵의 십년

2022. 9. 25. 12:24 | Posted by 소망지기

 

2022.09.25. 주일오전예배
본문 : 사도행전 9:26-30
제목 : 침묵의 십년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변화된 바울은 즉시로 복음을 전하지만 죽음의 위기를 겪습니다(참고, 23절).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지만 또다시 죽음의 위협을 당하는 바울을 형제들이 고향인 다소로 보냅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바울을 전도의 도구로 사용하지 않고 왜 다소로 보냈을까요? 십년동안 아무런 기록이 없는 다소 생활을 마친 바울은 놀라운 하나님 구원의 도구로 사용됩니다(참고, 행 13장).

1. 복음에 대한 깊은 묵상의 시간.
비록 구원은 받았지만 구원에 합당한 지식 없이 자신이 가진 '열정'으로 복음을 전하지만 열매가 맺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십년의 침묵곳에서 깊은 말씀의 묵상과 이해를 얻은 후에 행한 전도에서는 많은 구원의 열매와 교회가 세워지게 됩니다(참고, 행13:16-41). 우리에게도 봉사나 사역보다 먼저 하나님에 대한 깊은 묵상과 교제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2. 인간관계의 폭이 넓어지는 깨어짐의 시간.
바울은 독립심과 독자적인 추진력을 갖춘 아주 주도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변화되자마자 혼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십년의 시간을 보내면서 아주 겸손하게 되고 협력할 줄 아는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그리고 옆에있는 사람을 세울 줄 아는자가 됩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오히려 그런 바울을 높이고 귀하게 사용하셨습니다.

3. 하나님의 사역을 이해하는 깨달음의 시간.
변화된 바울에게 중요한 것은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의 신임을 받는 것이었지만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합니다. 그러나 몇십년의 시간을 보낸 바울에게 중요한 것은 예루살렘의 사도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무명의 도시인 안디옥에가서 이방인들에게 말씀을 전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의 의미를 깨달은 결과입니다.

'주일예배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앙성숙의 내적 결실  (0) 2022.10.02
나의 마지막 고백  (0) 2022.09.18
믿음 성장의 3가지 요소  (0) 2022.09.11

나의 마지막 고백

2022. 9. 18. 12:26 | Posted by 소망지기

 

2022.09.18. 주일오전예배
본문 : 사무엘하 23:1-7
제목 : 나의 마지막 고백

 

 

누구에게나 마지막 순간은 찾아옵니다. 너무나 당연하고 누구나 인정하는 이 사실을 마주한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피할 일도 아닙니다. 어떤 모습으로 인생을 살아온 다윗이 마지막을 맞이하면서 고백하는 모습에서 우리도 어떤 마지막을 맞이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함께 귀 기울여 봅시다.

1. 내가 고백하는 나(1절).
다윗은 자신을 '높이 세워진 자', '기름 부음 받은 자', '노래 잘하는 자'로 고백합니다. 자기 삶을 자수성가한 성공인으로 고백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온 삶임을 고백합니다. 가장 낮은 목동에서 시작해서 한 나라의 왕이 되었다는 성취감이나 자부심보다는 오직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고 예배하며 살아온 삶이었음을 고백합니다.

2. 하나님이 고백하는 나(3-4절).
하나님이 다윗을 향해 '공의로 다스리는 자',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로 부르고 있습니다, 다윗이게도 인간적인 약점과 허물이 많았음에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왕으로서 행한 어떤 업적이나 치적을 내세우지도 않습니다. 단지 어떤 마음과 믿으믕로 살아왔는지를 말씀합니다. 하나님에게 중요한 것은 삶의 결과보다 살아내는 과정입니다.

3. 삶이 고백하는 나(2절, 5절).
다윗은 자기 삶의 마지막을 하나님으로 인한 감사와 감격 그리고 확신으로 마무리합니다.(참고, 6-7절). 그 이유는 자기 삶을 '영원한 언약' 아래 있음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2절에서 성령도 '말씀이 혀에 있다'라는 것을 깨닫게 하듯,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삶이었습니다. 이런 삶이 인생의 마지막을 큰 확신과 당당함으로 마무리합니다.

'주일예배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침묵의 십년  (0) 2022.09.25
믿음 성장의 3가지 요소  (0) 2022.09.11
믿는 자의 치명적 반전  (0) 2022.09.04

믿음 성장의 3가지 요소

2022. 9. 11. 12:18 | Posted by 소망지기

 

2022.9.11. 주일오전예배
본문 : 누가복음 6:13
제목 : 믿음 성장의 3가지 요소

 

 

어떻게 생활하면 믿음이 잘 자랄까요? 교회 예배에 빠지지 않고, 말씀 공부를 열심히 하고, 헌신적인 봉사를 많이 하면 믿음이 자랄까요? 이런 것들은 좋은 믿음의 결과이지 수단은 아닙니다. 믿음이 자라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본받아 흉내 내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을 배워서 우리의 신앙에 그대로 적용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삶의 방식을 통해 믿음이 자라는데 필요한 요소를 살펴봅시다.

1. '부르사' = 지금, 여기서 시작합니다.
예쑤님은 특별한 사람 중에서 사도를 세운 것이 아니라, 평소 따르던 많은 제자 중에서 택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은 여기서(Here), 지금(Now), 이것으로(This) 시작하시는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자라기 위해서는 특별한 환경이나 상황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각자가 처한 현 상황에서 시작합니다. '지금'이 믿음 성장에 좋은 시간입니다.

2. '택하여' = 세밀하나 부분까지 믿음의 선택을 합니다.
예수님은 사도를 택하실 때 세상적인 스펙으로 정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선택하셨습니다. 믿음은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따라 결정되는데, 좋은 신앙이란 삶의 세밀한 부분까지도 믿음의 선택을 하지만, 믿음이 자라지 않는 경우는 믿음의 선택이 세밀하지 못하고 자의적이거나 원칙이 없을 때가 많습니다. 믿음은 바른 '선택'을 먹고 자랍니다.

3. '칭하셨으니' = 주어진 모든 상황을 하나님의 뜻으로 인정합니다.
비록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 선발된 12명의 제자의 면면이 부족할지 모르지만 예수님은 그들에게 사도라는 명칭을 붙였습니다. 믿음의 선택을 했다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보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고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믿음이 자란다는 것은 자기 주변의 크고 작은 일에 하나님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주일예배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마지막 고백  (0) 2022.09.18
믿는 자의 치명적 반전  (0) 2022.09.04
믿는 자의 치명적 매력  (0) 2022.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