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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김포시 양촌읍 김포한강4로 278번길 7-15(석모리 882-2) 교회 031-996-9100 목사님 010-2500-2004 e-mail : jaekimpst@gmail.com 선교후원 : 농협 301-0068-481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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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말씀'에 해당되는 글 711

  1. 2023.06.18 제자, 사도, 장로(2)
  2. 2023.06.11 이런 장로가 됩시다.
  3. 2023.06.04 사도적이십니까?
  4. 2023.05.28 제자입니까?
  5. 2023.05.21 제자, 사도, 장로
  6. 2023.05.14 무너진 가정의 회복
  7. 2023.05.07 부활 신앙
  8. 2023.04.30 부활이 일으킨 변화(3)
  9. 2023.04.23 부활이 일으킨 변화(2)
  10. 2023.04.16 부활이 일으킨 변화(1)

제자, 사도, 장로(2)

2023. 6. 18. 12:22 | Posted by 소망지기

 

2023.06.18. 주일오전예배
본문 : 마태복음 27:55-56
제목 : 제자, 사도, 장로(2)

 

 

지금까지 수 주에 걸쳐 베드로의 신앙을 중심으로 성숙해지는 믿음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제자, 사도, 장로와 같은 신앙 성숙은 특별한 믿음의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은 예수님을 사랑하고 신실한 믿음으로 살아내려는 사람은 누구나 가능함을 말해 줍니다. 오늘의 성경에 등장하는 한 무리의 여인들처럼 그럴듯한 직분은 없지만 아름다운 믿음의 삶을 보면서 헌신과 도전의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1. 제자 : 묵묵히 예수님을 따르고 섬깁니다.
예수님 당시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보잘것없었습니다. 제자들과 여자들은 예수님을 따르고 섬기며 예루살렘까지 왔지만 결국 십자가 앞에는 여자들만 있습니다. 이것은 상황이나 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제자의 삶이란 이 여자들처럼 자신의 목적이나 환경을 따라 살지 않고 오직 예수님만을 믿고 따르는 신실한 사람입니다.

2. 사도 : 순종하여 가서 말씀을 전달합니다(참고, 마28:10).
예수님 당시의 유대 문화에서 여성의 활동이나 증언은 신뢰받지 못했습니다. 이런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음에도 예쑤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제자들에게 가서 들은 말씀을 그대로 전달하게 됩니다. 사도란 결과를 보장할만한 능력을 소유한 사람이 아니라, 그저 듣고 배운 말씀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순종의 믿음만 있어도 충분합니다.

3. 장로 : 이름도 없이 교회를 섬깁니다.
여인들은 예수님의 죽음과 장례와 부활을 목격한 특별한 경험을 가진 자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새롭게 시작된 교회 사역에서 주목할 역할을 감당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 성경에는 이들의 활동이 극히 드뭅니다. 그 이유는 이름 없이 묵묵히 교회와 성도를 섬기는 일을 감당했습니다. 장로는 직분의 의미가 아니라 삶의 의미인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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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장로가 됩시다.

2023. 6. 11. 12:31 | Posted by 소망지기

 

2023.06.11. 주일오전예배
본문 : 디도서 1:5-9
제목 : 이런 장로가 됩시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장로'란 장로교회의 조직적 당회의 회원으로서 다스리고 치리하는 직분입니다. 이런 개념은 성경적이기보다는 교리적이고 역사적인 산물입니다. 성경적인 의미에서의 '장로'는 한 교회에서 성도들을 가르치며 양육하는 오늘날의 목회자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장로의 자격은 세상적인 능력이나 실력과는 다른 차원의 자질을 요구받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장로의 자격을 살펴봅시다.

1. 신앙 인격.
오늘 본문과 함께 디모데전서 3:1-7에서도 장로(감독)의 자격에 관한 내용이 언급됩니다. 그런데 후보자의 능력이나 실력에 관한 것보다는 신앙으로 말미암는 삶의 모습, 즉 신앙 인격적인 면을 말하고 있습니다. 타고난 성품도 중요하지만 믿음으로 말미암아 변화된 삶의 모습이 더 중요하고 의미가 더 큼을 의미합니다.

2. 신앙 관계.
장로는 자기의 신앙 성장에 주력하기보다는 다른 성도를 양육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기에 사람과의 관계성이 중요합니다. 이런 관계성을 가정(6절: '한 아내의 남편'), 교회(7절: '청지기'), 사회(8절: '나그네를 대접')에서 확인하도록 합니다. 단순히 교회 안에서 보여지는 모습만이 아니라 삶의 전 영역에서 좋은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3. 신앙 진리.
9절에서 장로는 본인이 먼저 바른 말씀을 잘 배워야 하고, 배운 말씀을 잘 지켜 행함으로 다른 사람들을 권면하고 책망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장로는 권위적인 직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배우고 실천하는데 솔선수범하는 직분입니다. 그래서 성도를 양육하는 장로는 입이 아닌 자신의 삶으로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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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적이십니까?

2023. 6. 4. 12:17 | Posted by 소망지기

 

2023.06.04. 주일오전예배
본문 : 빌립보서 2:5-8
제목 : 사도적이십니까?

 

 

사도란 특정한 목적과 일을 이루기 위해 '보냄 받은 자'란 뜻입니다. 제자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이 사도적 삶의 모델로 본받은 사람은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보냄을 받아 오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직접 보여주신 사도적 삶을 본받아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살아내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가장 의미있고 가치있는 신앙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1. '여기지 아니하고'(6절).
예수님이 영광의 보좌에 머물지 않고 이 땅으로 오셨듯이, 사도는 자신이 누리고 있는 현재의 익숙한 삶에 안주하지 않고 오히려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비록 제 생각이나 성향과 다르다고 외면하기보다는 다름을 수용하고 그 차이를 인정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2. '같이 되셨고'(7절).
하나님의 본채이신 예수님은 하늘의 영광스러운 모습 그대로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연약하고 불완전한 인간의 모습과 성향과 '같은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누렸던 익숙한 것을 비우고 내려놓아야 합니다. 보냄을 받은 사도는 '돼라'고 가르치기 전에 먼저 '되어 주는' 헌신이 요구됩니다.

3. '복종하셨으니'(8절).
제자의 삶과 사도의 삶을 나누는 가장 분명한 기준은 '순종'에 있습니다. 제자는 여전히 자기 생각이나 방법을 고집하는 면이 있지만, 사도는 철저하게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사도행전을 '성령행전'이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결국, 사도적 삶이란 자기 감정이나 판단으로 행동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는 수고와 노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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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입니까?

2023. 5. 28. 12:26 | Posted by 소망지기

 

2023.05.28. 주일오전예배
본문 : 열왕기하 2:9-10
제목 : 제자입니까?

 

 

엘리사를 제자 삼은 엘리야는(참고, 왕상19:19-21) 하늘로 올라기기 전에 길갈, 벧엘, 여리고 그리고 요단까지 함께 여행하면서 엘리사가 참 제자로 성장했는지 확인하려고 합니다. 마치 예수님의 제자들과 함께 복음을 전하러 다니는 모습과 비슷합니다. 이에 엘리사는 "갑절의 성령"을 구함으로써 선지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이 장면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과 도전은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1. 엘리야와 엘리사의 여행.
길갈, 벧엘, 여리고, 요단에서 만난 사람들은 선지자의 제자들입니다. 그 제자들은 영적인 것보다는 현실적인 것에 더 관심이 있는 사람들입니다(참고, 3절, 5절). 이것은 단지 그들만의 모습이기보다는 당시의 사회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이런 상황에 머물러 있기를 원치 않고, 오히려 가장 근본적인 것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2. 엘리사의 원함.
제자로서 스승에게 구할 것이 세상의 명성이나 안전이 보장되는 스승이 행하던 사역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을 이어받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는 눈 앞의 유익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원하심을 알고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엘리사는 스승으로부터 세상을 바꾸는 힘은 오직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음을 깨달았고 이것을 구했습니다.

3. 엘리사의 사역.
엘리야의 승천 이후, 엘리사가 여리고와 벧엘에서 행한 사역을 소개하는 이유는 그가 성령의 능력으로 사람들의 영적인 면을 고치는 사역자임을 보여줍니다(참고, 왕상2:19-20). 즉, 제자란 스승의 사역만을 이어가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을 이루는 사람입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성령입니다. 제자란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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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 사도, 장로

2023. 5. 21. 12:23 | Posted by 소망지기

 

2023.05.21. 주일오전예배
본문 : 베드로전서 5:1-3
제목 : 제자, 사도, 장로

 

 

베드로는 갈릴리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다가 예수님의 부름을 받고 제자로 헌신하였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남다른 노력과 수고를 했지만 결국 부인하고 도망갔지만, 부활하신 예수를 통해 다시 복음을 전파하는 사도로 쓰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는 한 교회를 섬기는 장로로 소개합니다. 이러한 직분들이 주는 의미를 통해 신앙생활의 진면목을 함께 살펴봅시다.

1. 제자.
제자란 문자 그대로 배우는 사람입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나, 유용한 것을 배워서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려는 사람입니다. 베드로뿐만 아니라 다른 제자들도 이런 목적으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의 시작은 무엇인가 유익을 얻고 필요한 부분을 채우기 위함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2. 사도.
사도란 보냄을 받은 자란 뜻입니다. 예수의 부활을 통해 그리스도이심을 알리는 일을 감당하는 자로 세워졌습니다(참고, 행1:22). 사도는 성령이 인도하는 곳으로 가서 듣든지 아니 듣든지 예수가 주이심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장소나 형편보다 전하는 복음과 메시지에 사로잡힌 사람입니다.

3. 장로. 
장로는 일반적으로 어른이나 연장자로서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초기 교회에서는 나이보다는 신앙적인 면에서 교회에서 성도들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장로는 다른 사람들을 하나님의 제자로, 사도로, 또 다른 장로로 세우기 위해 가르치고 섬기는 일을 합니다. 베드로가 가진 마지막 직분은 장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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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가정의 회복

2023. 5. 14. 12:29 | Posted by 소망지기

 

2023.05.14. 주일오전예배
본문 : 룻기 2:19-23
제목 : 무너진 가정의 회복

 

 

룻기는 사사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한 가정의 이야기입니다. 어둡고 암울한 분위기의 사사시대에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비추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예상과 달리 이방인이요, 과부인 룻과 그의 시어머니 나오미입니다. 이들이 알려주는 것은 무너진 가정이 구원자인 보아스(예수님)를 통해 회복되듯이, 사사시대의 영적 타락과 부패가 오직 하나님을 통해서만이 회복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가정의 회복도 예수님으로 가능함을 기억합시다.

1. 믿음의 자리를 돌아오라(19절).
사사기에서 베들레헴은 떠나는 곳으로 묘사되고 있는데(참고, 삿17:8, 19:1), 그 결과는 신앙적 타락이었습니다. 나오미의 가정도 떠남으로 결국 모든 것을 잃었지만 다시 돌아옴으로 회복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비록 다 잃어버리고 빈손이더라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자리로 돌아오면 하나님의 회복은 다시 시작된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2. 예수님께 집중하라(20-22절).
'기업 무를 자'란 빚을 갚거나 가문의 대를 이어줄 친족을 의미합니다. 룻과 나오미에게 보아스는 먹을 양식을 공급하는 부자로 여겨진 것이 아니라, 무너진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울 '구원자'로 여겨졌습니다. 보아스는 예수님의 상징입니다. 예쑤님은 특정한 문제만을 해결해 주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가정과 그 운명까지 바꾸실 분임을 알아야 합니다.

3. 한 마음으로 연합하라(23절).
룻과 나오미는 어려움 환경 속에 살고 있지만 마음으로 하나가 되어 서로 권면하고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특히 신앙적인 면에서 룻은 시어머니의 인도를 전적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함으로써 자신의 운명뿐만 아니라 믿음의 가문을 세우는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된 마음을 통해 더 풍성하게 이루어짐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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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신앙

2023. 5. 7. 12:27 | Posted by 소망지기

 

2023.05.07. 주일오전예배
본문 : 요나 2:4-9
제목 : 부활 신앙

 

 

예수님의 부활과 그 부활을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은 신약 시대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구약 시대에도 이런 신앙과 삶이 존재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요나입니다. 요나는 BC 750년에 이미 예수님의 부활과 그 부활을 믿는 자가 가져야 할 신앙 태도를 실제적으로 보여준 사람입니다. 자신이 직접 죽음과 부활을 경험하며 고백하는 신앙을 통해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점은 무엇인지 함께 살펴봅시다.

1. 성전(예수님)을 바라보겠나이다(4절).
물고기 뱃속에서 드려지는 요나의 기도 속에는 현재의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간절히 사모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소입니다. 단순히 건물이나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 자체임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부활 신앙으로 살아가는 성도는 몸이 성전된 예수님을 바라고 소망하며 의지하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2.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9절).
요나는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할 사명을 가진 자였음에도 그 직분을 망각하고 도망가다가 풍랑으로 물고기 뱃속에 갇혔습니다. 이 같은 절망의 순간에 깨달은 것은 자신이 받은 사명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죽음의 문턱에 다다랐지만,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겠다는 거룩한 고백은 새로운 부활의 삶으로 열매 맺게 됩니다.

3.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9절).
요나는 하나님이 자신을 죽음으로부터 다시 살려 줄 것을 알았을까요? 요나에게 '구원'은 절망의 환경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다시 깨닫고 자기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요나에게 구원은 하나님을 다시 깨닫고 자신의 존재를 재발견하는 것입니다. 부활 신앙은 주어진 상황과 상관없이 하나님이 구원이 되는 고백적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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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이 일으킨 변화(3)

2023. 4. 30. 12:25 | Posted by 소망지기

 

2023.04.30. 주일오전예배
본문 : 요한복음 2:19-22
제목 : 부활이 일으킨 변화(3)

 

 

성전은 유대인들의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성전을 헐면 사흘 동안 다시 짓겠다고 하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 말의 의미를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야 깨닫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전을 헐라는 예수님의 의미와 성전이 된 예수님의 육체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살펴보면서 부활로 인하여 드러난 신앙의 변화를 경험하는 시간이 되길 기대합니다.

1. 예수님이 성전 되시다.
성전을 헐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더 이상 성정의 기능이 작동하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성전이 무너짐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전통으로 설명하셨습니다(참고, 막13:8).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예수의 신분이 드러남으로써 신앙의 중심이 성전에서 예수님으로 변경되었습니다. 따라서 신앙의 모든 의미는 예수님이고 예수 안에서 있음을 알려 줍니다.

2. 교회가 시작되다.
예루살렘의 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제사와 절기의 유대교 신앙은 막을 내리고, 혈통이나 성별을 초월하여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예수님을 왕으로 섬기는 새로운 공동체가 시작되었는데 이것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장소나 건물이 아니라 예수님을 알고 그 가르침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상징은 다른 것이 아닌 오직 예수입니다.

3. 일꾼들이 세워지다.
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제사장이나 서기관들과는 달리 예수님을 자발적으로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님의 일꾼으로 세워졌습니다. 이 들은 종교 지도자의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낮아져서 섬기는 일꾼으로 세워진 사람들입니다. 이들에 의해 교회가 세워지고 유지되며 예수님의 말씀이 전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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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이 일으킨 변화(2)

2023. 4. 23. 12:30 | Posted by 소망지기

 

2023.04.23. 주일오전예배
본문 : 사도행전 2:33-35
제목 : 부활이 일으킨 변화(2)

 

 

시편16편을 인용하면서 예수님의 부활로 인한 변화에 대하여 설교한 베드로는 계속해서 시편 110편을 인용하면서 예수님의 신분이 누구인가를 설명합니다. 한낱 갈릴리의 가난한 목수 또는 종교 지도자들이 가진 기득권에 반발하는 사회 개혁가가 아니라 예수는 예언된 그리스도요 하나님이라고 결론 맺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인하여 드러난 예수님의 신분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1. 성령이 임하셨습니다(33절).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 자라고 증언하였고(막1:8), 예수님 자신도 부활 승천함으로써 보혜사이신 성령이 오신다고 하셨습니다(요16:7).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기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 것을 지시하신 대로 성령이 임하였습니다(행1:4-5). 따라서 예수님의 부활은 모든 믿는 자에게 성령이 임하게 하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2. 예수님이 하나님입니다(34-35절).
시편 110:1절을 인용하면서 다윗이 "주"라고 고백한 사실로 그리스도는 다윗의 후손이 아니라 다윗의 하나님임을 알려줍니다(참고, 막12:36-37). 따라서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으로 와서 다윗의 나라를 재건하는 정치적인 메시아가 아니라, 창조의 하나님으로서 온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일을 하시는 분임을 말해줍니다.

3.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입니다(36절).
예호와 하나님은 위엄과 영광스럽고 초월적인 존재이기에 감히 마주할 수 없는 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친히 인간의 삶을 사셨기에 우리와 충분히 공유하고 공감하는 하나님으로서 친밀함과 친근함을 줍니다. 그래서 어떤 모습으로든지 예수님을 찾고 의지하고 동행할 수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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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4. 16. 12:28 | Posted by 소망지기

 

2023.04.16. 주일오전예배
본문 : 사도행전 2:25-32
제목 : 부활이 일으킨 변화(1)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술 취한 사람들로 오해받자 베드로는 처음으로 설교하게 됩니다. 성령에 관하여 설명하나가(15-21절) 본론에서는 예수님의 부활에 전하고 있는데, 시편 16장을 언급하면서 메시아로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임을 증명합니다. 베드로는 시편 16장이 메시아 시편으로서 다윗의 입을 통해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의 고백을 담고 있음을 소개하는 것에서 부활을 믿는 성도들이 가져야 할 삶의 자세에 대하여 가르쳐 줍니다.

1. 존재감의 변화(시 16:1-3절).
시편 16장에서 "나", "내가"는 다윗이 아니라 예수님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고난의 십자가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있다면 오늘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땅에 있는 성도들'로 즐거움을 삼으셨습니다. 성도의 존재감은 무슨 일을 해야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만으로도 예수님을 기쁘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2. 삶의 의미 변화(시 16:4-8절).
죽음을 이기고 부활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여호와가 나의 산업이며 분깃'(5절)이란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날마다 밤마다 하나님으로 만족하는 삶을 살겠다고 고백합니다. 남들보다 더 많이 가진 재물과 권세가 삶을 의미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 가장 큰 복임을 알게 됩니다.

3. 영, 혼, 육의 변화(시 16:9-11절).
이런 결과들로 인해 당면한 상황과는 상관없이 우리의 영과 혼과 육이 기쁨과 감사함으로 살게 됩니다. 즉, 부활은 단순히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는 '소생'의 의미(예: 나사로)가 아니라, 삶의 가치와 태도가 확연히 달라지는 '거듭남'의 의미입니다. 다윗은 장차 예수님의 부활로 인해 일어날 일들을 생각하면서 기쁨과 즐거움으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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