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4. 07. 금요예배
본문: 마 6:9-10
제목: 이렇게 기도합시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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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02. 주일오전예배
본문 : 마가복음 11:2-3
제목 : 나귀 새끼를 타신 예수님
오늘은 종려주일로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한 주간을 예루살렘에서 보내기 위해 입성하신 날입니다. 예수님의 생애 동안 여러번 예루살렘을 방문했었겠지만 오늘 마지막 방문은 가장 특별한 의미가 있기에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십니다. 왜 일반적인 왕이나 메시아의 등장처럼 화려하고 위엄있는 모습이 아닌 사람이 타 보지 않은 나귀의 새끼를 타고 가셨을까요? 여기에 담긴 교훈을 알아봅시다.
1. 순종하는 신앙.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가신 것은 약 500년 전에 슥9:9절에 예언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함입니다(참고, 마21:2-5). 자신이 메시아이자 왕이심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려는 예수님은 다른 방법을 사용할 수 있음에도 말씀대로 순종하려는 의지를 보여줍니다. 이것은 오늘 성도들의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이 무엇인지를 확인시켜줍니다.
2. 겸손한 신앙.
슥 9:9에서 나귀 새끼를 타는 것은 '겸손'을 의미한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를 타셨습니다. 나귀 새끼뿐이어서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새끼를 타신 것은 그만큼 겸손에 대한 각별한 의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뽑은 칼보다 칼집에 꽂힌 칼이 더 위엄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3. 거룩한 신앙.
'거룩'은 세상과 다름을 의미합니다. 예수님 앞에서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10절) 라고 외치는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예수님이 세우려고 하는 하나님나라는 세상 나라와 사람들이 기대하는 나라와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십자가 죽음이 실패처럼 보였지만 결국 영생의 승리의 길이듯, 성도의 삶은 세상과 달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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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03. 31. 금요예배
본문: 느 1:1-11
제목: 중보기도는 기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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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26. 주일오전예배
본문 : 욥기 23:10-17
제목 : 욥의 세 가지 실수
마귀가 욥에게 고난을 통해 시험하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고 불평하게 만들기 위함입니다(참고, 욥1:11, 2:5). 그러나 이런 점에서 무지했던 욥은 하나님 앞에서 큰 실수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비단 욥의 경우만이 아니라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물론 나중에 깨닫고 하나님을 고백하고 찬양하는 회복이 일어나지만(참고, 욥42:5), 고난 중에 주의하고 경계해야 할 점을 살펴봅시다.
1. 억울함(10절).
욥은 자신이 당하는 고난에 대하여 하나님께 항의하려 하지만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고 불평합니다(6-9절). 하나님은 자신의 모든 것을 잘 알고 있으니 만나서 자초지종을 설명하면 고난은 해결될 문제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안타깝고 억울하다고 생각하면서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돌리고 있습니다.
2. 자기 의(11-13절).
억울함의 근원은 자신을 하나님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자기 의'에서 시작합니다. 이것은 모든 선악의 기준을 자기에게 두려는 죄의 영향 때문입니다(참고, 창3:5). 인간이 행하는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의롭다고 여겨주시는 은혜로 말미암는 것임을 모르고 자신이 행한 일만을 생각하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3. 오해(13-17절).
그 결과 하나님을 오해하는데, 하나님은 누구의 말이나 형편을 살피지 않는 고집불통이고, 예측할 수 없는 분이며, 자기 일 외에는 무관심한 분으로 여깁니다(참고, 욥24:1-12). 결국 욥은 고난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예측할 수 없는 하나님 자체가 두렵다고 고백합니다(16-17절). 하나님을 자신의 상황에서 조성된 단편적인 지식으로 이해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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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03. 24. 금요예배
본문: 왕상 3:4-15
제목: 무엇을 구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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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9. 주일오전예배
본문 : 시편 46:10-11
제목 : 문제 앞에 섰을 때
살아가다 보면 크고 작은 문제에 부딛치게 됩니다. 당면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가에 따라 삶의 의미와 결과가 달라집니다. 그래서 인생의 문제는 장애물이기보다는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하고 깊이를 더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중요한 겻은 어떤 종류의 문제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에 있습니다. 이를 위해 문제 앞에 섰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있는데 본문을 통해 이에 대한 지혜를 구해봅시다.
1. 하던 일을 멈추십시오(10절 상).
"너희는 가만히 있어(Be Still)"라는 것은 모든 행동이나 동작을 멈추라는 것입니다. 운전할 때 가속페달보다 브레이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듯이, 언제 멈춰야 하는지 아는 것이 주요합니다. 홍해 앞에서(출14:13-14), 여리고 성 앞에서(수6:10), 호렙산에서 엘리야(왕상19:12)처럼 잠잠히 있어야 볼 수 있고 들리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습니다.
2. 하나님을 묵상하십시오(10절 하).
문제 앞에 서게 되면 문제 자체에 관심을 가지고 조사하고 연구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 합니다. 그러나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라는 것은 위기 앞에서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함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깨달음으로 말미암는 기쁨과 은혜가 문제를 극복할 힘과 지혜를 공급해 줍니다.
3.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십시오(11절).
묵상함으로 깨달아진 하나님은 상상 속의 존재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현실 속에 그대로 임재하는 분입니다. 문제 앞에서 어리둥절한 그 상황 곳에 하나님도 함께 계심을 느끼고 고백할 때, 문제는 더 이상 보이지 않고 영광의 하나님만 볼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말씀과 예배와 기도, 그리고 믿음의 선포로 인해 그 존재감이 드러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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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03. 17. 금요예배
본문: 삿 2:8-15
제목: 다음 세대를 위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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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2. 주일오전예배
본문 : 베드로전서 5:8-10
제목 : 광야 탈출
베드로 사도는 고난과 역경 속을 살아가는 성도들을 위로하기 위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참고, 1:6-7, 4:12-13). 누구나 빨리 광야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단순히 광야의 환경에서 벗어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성도들을 광야로 인도하는 데는 분명한 의도가 있듯이, 광야와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고난의 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까요?
1. 환경보다 마귀와 싸워야 합니다(8-9절 상).
광야에서는 환경이 주는 어려움으로 인해 당면한 문제에 매이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경계하고 싸워야 할 대상은 눈앞에 다가온 "문제"가 아니라, 그 뒤에 있는 "마귀"입니다. 마귀는 문제를 왜곡하거나 포장해서 실체를 보지 못하게 함으로 해서 결국 낙심하고 절망케 합니다. 광야에 있을 때는 환경보다 마귀의 미혹에 더 주의해야 합니다.
2.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마십시오(9절 하).
광야에 들어가면 외롭고 불안해서 자신의 형편을 주변 사람들과 비교하기 쉽습니다. 그로 인해 자괴감이나 열등감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광야에서는 더 편한 사람도, 더 불편한 사람도 없습니다. 단지 자신이 힘들기에 다른 사람들이 자기보다 낫다는 착각에 빠질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저마다 광야의 길을 걷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3. 고난 속에 숨겨진 은혜를 누리십시오(10절).
광야에 오아시스가 있듯이, 인생의 광야에는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가 숨겨져 있습니다.이 은혜는 광야에서 장막을 치듯이, 먼저 '터를 닦고', '뼈대인 기둥을 세우고', '넘어지지 않게 튼튼히 묶고', '온전한 집을 완성'하도록 도와주십니다. 결국, 관야에서 임하는 은혜는 믿음의 집을 짓도록 합니다. 믿음의 집이 완성된다면 그것이 광야의 졸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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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03. 10. 금요예배
본문: 애 3: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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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5. 주일오전예배
본문 : 출애굽기 13:17-18
제목 : 믿음의 길이 힘든 이유
하나님은 출애굽하는 이수라엘 백성들을 가장 편하고 빠른 길인 해변 길("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로 인도하면 1주일이면 가나안에 도착할 수 있음에도 한참을 돌아가야 하는 "홍해의 광야 길"로 인도하십니다. 쉽고 빠른 길을 두고 왜 돌아가야 하는 광야로 인도하시는 걸까요? 인생길이 힘들고 고달프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광야의 한 가운데 외롭게 서 있는 것 같은 때 있습니다. 여기에 숨겨진 하나님의 의도를 생각해 봅시다.
1. 전쟁보다는 광야를 선택했습니다.
가난안으로 가는 지름길인 해변 길은 블레셋 사람들이 있기에 이들과는 전쟁해야 했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도우셔서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겠지만, 하나님의 의도는 전쟁에서 이기게 하는 것보다 광야에서 믿음의 훈련을 하기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개입하심으로 만들어지는 승리보다는 스스로 준비하고 훈련하여 쟁취하는 승리를 더 기대하셨습니다.
2. 가나안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목적입니다.
하나님은 빠른 길보다는 더디 가는 광야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가나안으로 가는 목적이 가나안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고독하고 부족함이 많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필요성과 하나님 임재의 소중함을 느끼게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삶의 '힘듦'은 하나님의 손길이 필요함을 알려주는 알람입니다.
3. 하나님을 배우는 과정입니다.
삶의 환란과 고난은 하나님을 찾고 배우기에 좋은 환경을 만들어줍니다. 오히려 좋은 환경은 하나님을 잊어버릴 위험성이 있습니다. 광야의 삶은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곳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찾고 의지할 수 밖에 없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고난속으로 인도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배우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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