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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김포시 양촌읍 김포한강4로 278번길 7-15(석모리 882-2) 교회 031-996-9100 목사님 010-2500-2004 e-mail : jaekimpst@gmail.com 선교후원 : 농협 301-0068-481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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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성육신

2024. 6. 16. 12:24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6. 16. 주일오전예배
본문: 누가복음 7:34-35
제목: 그리스도인의 성육신

 

 

성육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신학 용어로서 거룩하신 하나님이 인간의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심을 뜻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신학적 의미만이 아니라 인간들과 함께 어울리며 먹고 마시며 친구가 되어주는 실제적 삶까지 포함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삶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예수님의 성육신적 삶이 투영되고 반영되어야 할 것인데 어떻게 실천해 나갈지 함께 상고해 봅시다.

1. '와서'
성육신적 삶의 첫 단계는 나와 '다름'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판단하거나 정죄하기보다는 '다름을 초월'하여 함께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7장에 예수님이 만나는 사람들은 백부장, 과부의 죽은 아들, 바리새인과 죄지은 여자입니다. 이들은 당시 율법으로는 금기시되는 부류의 사람들이지만 예수님은 거리끼지 않고 그들과 함께 어울렸습니다.

2. '먹고 마시매'
당시 바리새인들의 눈에는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과 어울리는 사람으로 비친 것은 실제로 예수님이 그렇게 행동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그들과 어울렸을까요? 그들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성육신적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불신자들의 친구가 되어 함께 먹고 마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구우너하기 위합입니다.

3.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성육신적 삶에서 가장 위험 요소는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의나 자긍심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육신적 삶의 의미는 행위의 주체인 자신이 아니라 행위의 대상에서 찾아야 한다고 합니다. 즉, 바리새인들처럼 자기 행위에 대한 자기 의로 만족하기보다는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의 영적인 변화에서 성육신적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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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을 버리고 소망을 소유하자

2024. 6. 14. 22:21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06. 14. 금요예배

본문: 롬 12:12

제목: 소원을 버리고 소망을 소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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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2024. 6. 9. 12:16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6. 9. 주일오전예배
본문: 요한복음 21:5
제목: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초대교회에서 물고기('익투스')는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의 첫머리 글자로 이루어진 단어여서 신앙인의 표시로 여겨져서 복음서의 저자들은 이러한 '익투스'를 자주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만날 때 물고기의 이미지를 아주 특별하게 하용하고 있습니다. 고기잡이하던 제자들에게 나타나 아침 조반을 준비해 주시는 예수님의 의도는 무엇인지 함께 상고해 봅시다.

1. 익투스와 옵사리온
가장 일반적인 의미로서 물고기는 '익투스'로 표기하는(참고, 6, 8, 11절) 반면, 소금에 절이거나 요리된 상태의 물고기는 '옵사리온'으로 표시합니다(참고, 9, 10, 13절). 사도 요한은 이런 차이를 철저하게 구분하면서 제자들이 잡은 153마리의 '익투스'와 예수님이 친히 준비해 주신 떡과 '옵사리온'의 차이를 상기시키며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2. 예수님이 찾으시는 것은 물고기가 아니라 음식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고기가 있느냐?(5절)' 물으신 것은 밤새도록 고기잡이한 결과로 얼마나 많은 물고기를 잡았는지를 묻는 것이 아니라 '프로스파기온'으로서 '먹을 음식'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말입니다. 이에 제자들의 대답은 '없습니다'입니다. 이어 예수님은 153마리나 되는 많은 물고기를 잡게 하십니다. 이렇게 하신 예수님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3. 익투스는 옵사리온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잡은 생선('옵사리온')을 좀 가져오라'(10절)고 하셨지만, 제자들에게는 옵사리온이 없습니다. 결국 자신들이 잡은 '익투스'가 아니라 예수님이 준비한 떡과 '옵사리온'으로 조반을 먹어야 했는데 이것은 베드로가 예수를 처음 만났을 때 모든 것을 버려두고 따랐듯이(참고, 눅5:11), 진정한 양식은 예수님께 있기에 예수를 따라야 함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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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세를 대비하자

2024. 6. 7. 22:21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06. 07. 금요예배

본문: 벧전 1:5-7

제목: 말세를 대비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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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잠언

2024. 6. 2. 12:17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6. 2. 주일오전예배
본문 : 잠언 9:13-18
제목 : 21세기 잠언

 

 

잠언은 삶의 여정 속에서 느끼고 경험한 신앙의 지혜를 모은 책입니다. 율법이나 역사적 사건을 다루기보다는 짧은 삶의 언어를 통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할 것인가에 대한 교훈과 권면을 줍니다. '미련한 여인'을 통해 21세기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주는 신앙의 지혜에 귀 기울여 봅시다.

1. 한 번 은혜로 지옥 간다(13절).
13절의 '어리석다'(히:페타유트)의 원어적 의미는 '순진함' '단순함'입니다. 그런데 어리석다고 번역되는 이유는 '하나' 또는 '한가지'만 알기 때문입니다. 책 한 권만 읽고 떠드는 사람이 위험하고, 한번 은혜받은 것을 전부인듯 여기는 사람이 위험합니다.

2. 높이가 아닌 깊이로 승부하라(14-16절).
미련한 여인은 '높은 곳'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잘못된 가르침으로 미혹합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높은 곳'을 좋아하고 선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세계는 높은 곳이 아닌 깊은 곳에 있습니다. 깊은 곳에 생명수가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3. 사자는 썩은 고기를 먹지 않는다(17절).
도둑질하고 몰래 먹는 음식은 '썩은 음식'입니다. '썩은 음식'을 먹는 이유는 그런 음식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자는 썩은 고기에는 절대 입을 대지 않듯이, 썩음 음식을 안 먹으려고 애쓰지 말고 사자가 되길 애써야 합니다.

4. 새우잠을 자더라도 고래꿈을 꿔라(18절).
미련한 여인이 앉은 곳이 높고 편안해 보이지만 죽음의 그늘진 곳임을 모르기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유혹에 빠져 끌려갑니다. 좀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은 충동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있는 곳이 불편하여 새우잠을 자더라도 고래꿈을 꿀 수 있다면 행복한 것입니다.

이런 죽음 주옵소서

2024. 5. 31. 22:21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05. 31. 금요예배

본문: 빌 2:17-18

제목: 이런 죽음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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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론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2024. 5. 26. 12:24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5. 26. 주일오전예배
본문: 다니엘 1:3-7
제목: 바벨론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어린 다니엘에게 바벨론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곳입니다. 부유한 가정에서 생활하다가 하루아침에 포로가 되어 이역만리 타국까지 끌려간 시대의 희생자인 다니엘은 원망, 불평이나 신앙적 방황보다는 바벨론에서 적극적으로 적응하여 4명의 왕을 섬기면서 시대의 지배자가 되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도 바벨론이라고 불리는 '이 세대'로 끌려온 '시대의 희생자'처럼 사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다니엘처럼 '시대의 지배자'가 될 수 있습니다.

1. 믿음의 확신.
믿음의 확신이란 단순희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대한 절대적 신뢰입니다. 비록 환경은 나아지지 않더라도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강한 신뢰로 인해, 그가 끌려간 이후(BC 605년, 1차 포로)로 지속적으로 악화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2차, 3차 포로) 믿음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2. 믿음의 겸손.
겸손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존중과 섬김입니다. 그래서 겸손의 외적 모습이 섬김인데, 약자로서 강자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가진 능력이 있음에도 스스로 낮아져 섬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에도 낮은 자세로 죄인들을 섬긴 것처럼, 바벨론에서의 생활은 분명한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주변 사람을 복음으로 섬기는 삶입니다.

3. 믿음의 지혜.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지혜이고, 이 지혜로서 바벨론적인 것과 하나님의 것을 분별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바벨론에서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열심히 적응하며 생활하다가 정작 하나님을 아는 지혜를 소홀히 여기다가 영적 정체성을 잃고 맙니다. 바벨론 문화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원동력이 바로 영적 지혜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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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신앙 주옵소서

2024. 5. 24. 22:22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05. 24. 금요예배

본문: 왕상 2:2-3

제목: 이런 신앙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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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2024. 5. 19. 12:17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5. 19. 주일오전예배
본문: 학개 2:4-9
제목: 교회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열심있는 교회생활이 곧 구원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구약성경이 성전 생활이 곧 구원이 아님을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이 성전을 재건하다가 중단하고 16년 동안 방치하고 있던 것을 다시 시작할 것을 독력하면서 성전 자체보다는 성전에 담긴 의미를 상기심키는 것을 보면서, 오늘날 교회를 통해 하나님 백성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주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기울여 봅시다.

1.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붙잡아라(4절).
6월 24일 공사를 시작하였음에도 7월 21일 하나님 말씀이 임합니다. 그 이유는 재건되는 성전의 규모에 모두 실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참고, 3절) 이에 하나님은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히: 하짜크=붙잡다, 달라붙다, 강하다)"라고 말씀합니다. 이 뜻은 공사하면서 불평, 불만, 비교하지 말고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붙잡고 꼭 붙어있으라는 의미입니다.

2. 유한한 것으로 영원하신 하나님을 섬겨라(5-7절).
사람 보기에는 초라한 성전이지만 그 안에는 '언약의 말씀'과 '영'이 있기에 걱정할 필요 없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전의 목적은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곳이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입니다. 따라서 물리적인 장소나 건물보다 그곳에 임재하시는 영원하신 하나님을 인식하고 섬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3. 물질보다 영광으로 채워라(8-9절).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다"는 말은 '마음만 먹으면 금과 은으로 도배도 할 수 있어'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은 물질에는 관심 없고 오직 '영광'에만 관심 가지십니다. '영광'은 건물의 규모가 아니라 왕이신 하나님이 나의 왕 되심을 고백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보여주신 순종의 삶이 곧 영광의 삶임을 기억하고 따라갑시다.

성경적 아내의 회복

2024. 5. 17. 22:20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05. 10. 금요예배

본문: 창 2:18

제목: 성경적 아내의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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