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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김포시 양촌읍 김포한강4로 278번길 7-15(석모리 882-2) 교회 031-996-9100 목사님 010-2500-2004 e-mail : jaekimpst@gmail.com 선교후원 : 농협 301-0068-481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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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2024. 6. 9. 12:16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6. 9. 주일오전예배
본문: 요한복음 21:5
제목: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초대교회에서 물고기('익투스')는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의 첫머리 글자로 이루어진 단어여서 신앙인의 표시로 여겨져서 복음서의 저자들은 이러한 '익투스'를 자주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만날 때 물고기의 이미지를 아주 특별하게 하용하고 있습니다. 고기잡이하던 제자들에게 나타나 아침 조반을 준비해 주시는 예수님의 의도는 무엇인지 함께 상고해 봅시다.

1. 익투스와 옵사리온
가장 일반적인 의미로서 물고기는 '익투스'로 표기하는(참고, 6, 8, 11절) 반면, 소금에 절이거나 요리된 상태의 물고기는 '옵사리온'으로 표시합니다(참고, 9, 10, 13절). 사도 요한은 이런 차이를 철저하게 구분하면서 제자들이 잡은 153마리의 '익투스'와 예수님이 친히 준비해 주신 떡과 '옵사리온'의 차이를 상기시키며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2. 예수님이 찾으시는 것은 물고기가 아니라 음식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고기가 있느냐?(5절)' 물으신 것은 밤새도록 고기잡이한 결과로 얼마나 많은 물고기를 잡았는지를 묻는 것이 아니라 '프로스파기온'으로서 '먹을 음식'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말입니다. 이에 제자들의 대답은 '없습니다'입니다. 이어 예수님은 153마리나 되는 많은 물고기를 잡게 하십니다. 이렇게 하신 예수님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3. 익투스는 옵사리온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잡은 생선('옵사리온')을 좀 가져오라'(10절)고 하셨지만, 제자들에게는 옵사리온이 없습니다. 결국 자신들이 잡은 '익투스'가 아니라 예수님이 준비한 떡과 '옵사리온'으로 조반을 먹어야 했는데 이것은 베드로가 예수를 처음 만났을 때 모든 것을 버려두고 따랐듯이(참고, 눅5:11), 진정한 양식은 예수님께 있기에 예수를 따라야 함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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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잠언

2024. 6. 2. 12:17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6. 2. 주일오전예배
본문 : 잠언 9:13-18
제목 : 21세기 잠언

 

 

잠언은 삶의 여정 속에서 느끼고 경험한 신앙의 지혜를 모은 책입니다. 율법이나 역사적 사건을 다루기보다는 짧은 삶의 언어를 통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할 것인가에 대한 교훈과 권면을 줍니다. '미련한 여인'을 통해 21세기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주는 신앙의 지혜에 귀 기울여 봅시다.

1. 한 번 은혜로 지옥 간다(13절).
13절의 '어리석다'(히:페타유트)의 원어적 의미는 '순진함' '단순함'입니다. 그런데 어리석다고 번역되는 이유는 '하나' 또는 '한가지'만 알기 때문입니다. 책 한 권만 읽고 떠드는 사람이 위험하고, 한번 은혜받은 것을 전부인듯 여기는 사람이 위험합니다.

2. 높이가 아닌 깊이로 승부하라(14-16절).
미련한 여인은 '높은 곳'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잘못된 가르침으로 미혹합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높은 곳'을 좋아하고 선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세계는 높은 곳이 아닌 깊은 곳에 있습니다. 깊은 곳에 생명수가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3. 사자는 썩은 고기를 먹지 않는다(17절).
도둑질하고 몰래 먹는 음식은 '썩은 음식'입니다. '썩은 음식'을 먹는 이유는 그런 음식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자는 썩은 고기에는 절대 입을 대지 않듯이, 썩음 음식을 안 먹으려고 애쓰지 말고 사자가 되길 애써야 합니다.

4. 새우잠을 자더라도 고래꿈을 꿔라(18절).
미련한 여인이 앉은 곳이 높고 편안해 보이지만 죽음의 그늘진 곳임을 모르기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유혹에 빠져 끌려갑니다. 좀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은 충동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있는 곳이 불편하여 새우잠을 자더라도 고래꿈을 꿀 수 있다면 행복한 것입니다.

바벨론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2024. 5. 26. 12:24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5. 26. 주일오전예배
본문: 다니엘 1:3-7
제목: 바벨론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어린 다니엘에게 바벨론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곳입니다. 부유한 가정에서 생활하다가 하루아침에 포로가 되어 이역만리 타국까지 끌려간 시대의 희생자인 다니엘은 원망, 불평이나 신앙적 방황보다는 바벨론에서 적극적으로 적응하여 4명의 왕을 섬기면서 시대의 지배자가 되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도 바벨론이라고 불리는 '이 세대'로 끌려온 '시대의 희생자'처럼 사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다니엘처럼 '시대의 지배자'가 될 수 있습니다.

1. 믿음의 확신.
믿음의 확신이란 단순희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대한 절대적 신뢰입니다. 비록 환경은 나아지지 않더라도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강한 신뢰로 인해, 그가 끌려간 이후(BC 605년, 1차 포로)로 지속적으로 악화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2차, 3차 포로) 믿음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2. 믿음의 겸손.
겸손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존중과 섬김입니다. 그래서 겸손의 외적 모습이 섬김인데, 약자로서 강자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가진 능력이 있음에도 스스로 낮아져 섬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에도 낮은 자세로 죄인들을 섬긴 것처럼, 바벨론에서의 생활은 분명한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주변 사람을 복음으로 섬기는 삶입니다.

3. 믿음의 지혜.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지혜이고, 이 지혜로서 바벨론적인 것과 하나님의 것을 분별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바벨론에서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열심히 적응하며 생활하다가 정작 하나님을 아는 지혜를 소홀히 여기다가 영적 정체성을 잃고 맙니다. 바벨론 문화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원동력이 바로 영적 지혜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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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2024. 5. 19. 12:17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5. 19. 주일오전예배
본문: 학개 2:4-9
제목: 교회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열심있는 교회생활이 곧 구원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구약성경이 성전 생활이 곧 구원이 아님을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이 성전을 재건하다가 중단하고 16년 동안 방치하고 있던 것을 다시 시작할 것을 독력하면서 성전 자체보다는 성전에 담긴 의미를 상기심키는 것을 보면서, 오늘날 교회를 통해 하나님 백성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주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기울여 봅시다.

1.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붙잡아라(4절).
6월 24일 공사를 시작하였음에도 7월 21일 하나님 말씀이 임합니다. 그 이유는 재건되는 성전의 규모에 모두 실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참고, 3절) 이에 하나님은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히: 하짜크=붙잡다, 달라붙다, 강하다)"라고 말씀합니다. 이 뜻은 공사하면서 불평, 불만, 비교하지 말고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붙잡고 꼭 붙어있으라는 의미입니다.

2. 유한한 것으로 영원하신 하나님을 섬겨라(5-7절).
사람 보기에는 초라한 성전이지만 그 안에는 '언약의 말씀'과 '영'이 있기에 걱정할 필요 없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전의 목적은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곳이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입니다. 따라서 물리적인 장소나 건물보다 그곳에 임재하시는 영원하신 하나님을 인식하고 섬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3. 물질보다 영광으로 채워라(8-9절).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다"는 말은 '마음만 먹으면 금과 은으로 도배도 할 수 있어'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은 물질에는 관심 없고 오직 '영광'에만 관심 가지십니다. '영광'은 건물의 규모가 아니라 왕이신 하나님이 나의 왕 되심을 고백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보여주신 순종의 삶이 곧 영광의 삶임을 기억하고 따라갑시다.

은혜 안에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2024. 5. 12. 12:23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5. 12. 주일오전예배
본문: 욥기 42:10-17
제목: 은혜 안에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욥기의 결론은 단순히 물질적으로 갑절의 축복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욥기의 마지막은 신앙 회복을 통해 변화된 욥의 삶을 소개하는 것으로 마칩니다. 따라서 욥기를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는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신앙이란 무엇이며 이런 신앙으로 살아가는 생활은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부려는 것입니다. 고난에서 회복한 욥이 살아간 새로운 삶의 모습을 보면서 거룩한 도전의 시간을 함께 가집시다.

1. 이웃을 위해 기도하며 살자(10-12절).
1장에서 욥의 신앙을 소개할 때는 욥의 개인적인 신앙과 가족 간의 신앙을 소개합니다. 그러나 고난에서 회복한 후, 욥은 친구들을 위해 기도하고 이웃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른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된 사람은 주변 이웃들의 영혼에도 관심 가져야 합니다. '친구들을 위해 기도할 때 곤경을 돌이키셨다'라는 말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2. 새로운 가치관으로 살자(13-15절).
1장에서 욥의 일상을 소개할 때는 아들들의 모습을 그리던 것에 반해 고난 후의 욥의 일상은 딸들의 이름을 밝히고 그들에게도 아들과 같이 기업을 주었다고 소개합니다. 이것은 당시 문화로는 파젹적인 것으로 새로운 가치관으로 변화됨을 의미합니다. 익숙하고 전통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치관과 관점을 가지면 새로운 인생이 열립니다.

3. 채우는 인생을 살자(16-17절).
'늙어 죽었다'고 하지 않고 '나이가 차서(히:'싸베아') 죽었다'는 표현은 아주 특별한 것으로 아브라함(창25:8), 이삭(창35:29), 다윗(대상29:28)의 죽음을 소개할 때도 사용됩니다. 늙음을 소모적인 시간이 아닌 하나님의 기준에 채워가는 긍정적 의미의 표현입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삶이 더 의미있고 풍성하기에 잘 계획하고 준비해야 함을 내포합니다.

적진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2024. 5. 5. 12:22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05. 05. 
본문: 시편 137:1-6
제목: 적진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시편 137편은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간 유대인의 이야기입니다. 상황적으로는 모든 것이 무너지고, 심리적으로는 불안과 두려움, 신앙적으로는 무기력에 빠져 세상 사람들의 조롱과 비웃음을 온몸으로 받아야 하는 상황은 유다 백성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어쩌면 신앙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세상의 권세 앞에 무기력하게 지배당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이야기는 아닐까요? 세상 속의 적진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1. 시대와 상황을 분별해야 합니다(1-4절).
바벨론 사람이 유대인에게 '시온의 노래'를 부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찬양하려 함이 아니라 조롱하고 비웃기 위함입니다. 세상의 환호와 요구에 열심히 맞장구치는 것이 복음 전파가 아닙니다. 적진 속의 그리스도인은 무기력한 영적 능력에 대하여 처절하레 애통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세상과 벗하기보다는 깊은 영적 통찰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2. 바른 말씀을 분별하고 집중해야 합니다(5-6절).
'예루살렘을 잊지 않겠다', '예루살렘을 기억하고 최괴로 즐거워하겠다'라는 것은 단순히 고국이나 고향을 향한 그리움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모함입니다. 무너진 삶의 현장에서 다시 회복을 위하여 붙잡아야 할 것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열심인 신앙'이 아니라 '바른 신앙'을 통해 무너진 삶을 회복시키겠다는 간절한 열망의 고백입니다.

3. 영적인 것을 분별해야 합니다(7-9절).
에돔을 저주하고(7절), 바벨론을 저주하는 것은(8, 9절) 단순히 원수에 대한 복수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 적진 속에서야 비로소 적이 누구인지를 영적으로 분별하게 된 것입니다. 세상에는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영원한 것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영원하지 않은 것에 연연하거나 미련 두지 말고 단호히 거부하고 하나님 은혜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일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2024. 4. 28. 12:19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4. 28. 주일오전예배
본문: 레위기 11:44-45
제목: 일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레위기 1-10장까지는 '성막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규례를 소개하다가, 11-15장은 '일상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규례를 소개합니다. 이것은 성막에서 규례가 일상생활 속으로 확산하여짐을 의미합니다. 특히 11장에서 음식과 같은 '사소한' 영역까지 지켜야 할 규례를 정하는 것에는 특별한 의도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단순히 문자적인 계명으로 이해하고 먹을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으로 이해한 것에 반해, 그리스도인들이 이해해야 할 하나님의 의도에 대하여 함께 살펴봅시다.

1. 사소한 것에서도 '거룩'을 실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먹고 먹지 말아야 할 것을 세세하게 정하신 것은 그 음식물 자체의 정함과 부정함을 나타내려는 의도가 아니라, 이런 규정을 정하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려는 믿음을 보려는 의도입니다. 즉, 정함과 부정함의 기준은 음식물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께 있기에, 사소한 것에서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이 곳 '거룩'입니다.

2. 일상에 깃들인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해야 합니다.
성막에서만 하나님을 영광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 깃들인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 드림으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합니다. 매일 먹는 음식을 통해서도 '나는 너희의 하나님 되려...'(45절)하신다는 하나님의 의도를 명심해야 합니다. 작고 사소한 것을 통해서도 능히 하나님의 뜻과 의도를 이루어 드릴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3. 일상에서도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해야 합니다.
레위기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이 '거룩'인데, 거룩('카도쉬' = 분리, 구별)은 성도들도 닮아야 할 하나님 성품 중의 하나입니다. 거룩은 성막이나 특별한 장소에서만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도 충분히 누릴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이 거룩한 분인 것처럼 일상의 소소한 것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거룩에 동참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소돔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2024. 4. 21. 12:19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04. 21. 주일오전예배
본문: 창세기 19:12-16
제목: 소돔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삼촌 아브라함을 따라 가나안에 들어온 롯은 죄악으로 가득한 소돔과 고모라에 살고 있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이 도시들을 불로 심판하실 때 겨우 구원받는 처지가 됩니다. 롯의 문제는 소돔 같은 죄악의 도시에 산 것이 문제일까요? 아니면 성숙한 신앙이 없었던 것일까요? 오늘날 우리에게 소돔 같은 도시를 떠나 살아야 한다면 모두 산속으로 숨어들어야 할 것입니다. 문제는 소돔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낼 수 있는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롯을 통해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배워봅시다.

1. 환경에 맞는 신앙훈련이 필요합니다.
세상의 성공이나 세상의 편안함이 나쁜것은 아닙니다. 이런 것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다면 오히려 더 의미있는 삶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삶을 위해서는 철저한 신앙적 준비와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인 아브라함과 함께 생활하면서 롯이 하나님을 예배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믿음의 준비 없는 성공은 위험합니다.

2. 영적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롯은 소돔의 문화에 동화되어 살고 있었기에(참고, 1절, 8절), 위기 상황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전했을 때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이것은 평소 롯의 삶이 하나님과 상관없는 삶을 살았음을 보여 줍니다. 어쩔 수 없이 소돔에 살아야 한다면 하나님과 끊임없는 교제를 위한 기도, 말씀, 예배, 영적 친교, 등 영적 문화를 만들고 추구해야 합니다.

3. 생활의 목적을 하나님 안에 두어야 합니다.
천사의 재촉에도 롯은 여전히 미련있어 지체하고(16절), 산으로 도망하라는 천사의 말에 소알 성읍으로 도망하겠다고 하다가(20절), 나중에 다시 소알에서 산으로 도망합니다(30절). 이런 롯의 상태는 하나님께 순종하기보다는 여전히 자기 목적과 생각으로 살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비록 소돔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면 의미 있는 삶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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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그리스도인입니까?

2024. 4. 14. 12:17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04. 14. 주일오전예배
본문: 고린도후서 11:22-23
제목: 당신은 그리스도인입니까?

 

 

본문에는 하나님이 택한 백성들을 지칭하는 네 가지 명칭이 언급되는데, 바울은 거짓 교사들이 그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사용하고 있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공동체의 명칭을 부여했다면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 의도에 부합하는 삶을 살아내야 합니다. 과연 당신은 이름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는가요?

1. 히브리인: 경계를 넘어라.
'히브리'라는 말은 아브라함에게 처음 사용되었는데(창 14:13), 그 어원은 '하비루'('강을 건너온 자')에 두고 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강은 삶의 경계요 안전을 보장해 주는 영역을 뜻합니다. 이런 익숙한 생활에 머물기보다는 순종의 삶을 선택하는 것이 히브리인입니다.

2. 이스라엘: 고집을 버려라.
하나님과 씨름한 압복강에서 야곱에게 준 새 이름입니다. 자기의 생각과 계획으로 살았던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섬기면 하나님이 인도해 주심을 믿고 사는 삶입니다. 그래서 참 이스라엘의 삶은 내 생각과 고집을 버려야 합니다.

3. 유대인: 교만을 버려라.
'아브라함의 후손'은 유대인을 의미하는데, 원래는 유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용어였다가 바벨론 포로 이후에는 혈통적 민족적 의미로 변했습니다. 12지파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유다 지파가 이스라엘의 정통성을 대표한다는 자부심과 교만의 표현입니다.

4. 그리스도인: 삶으로 증명하라.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과 대비하여 바울은 논리적 반박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의 구체적인 모양과 모습으로 대응합니다(참고, 23~33절까지).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 삶의 의미와 가치를 자기 삶 속에서 실현하는 존재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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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그 이후의 삶

2024. 4. 7. 12:21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4. 7. 주일오전예배
본문: 창세기 26:23-28
제목: 부활 그 이후의 삶

 

 

창세기의 4대 족장 중에서 이삭에 관한 기록이 가장 단출하기에 그를 통한 신앙적 교훈을 간단명료하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삭은 모리아 산에서 죽음의 위기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그 이후의 행적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한 성도들에게 귀중한 삶의 지침을 줍니다. 창세기 26장은 이삭의 신앙적 흔적을 집중적으로 언급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부활의 새 생명을 누리는 성도들이 배우고, 실천해야 할 신앙의 교훈을 함께 살펴봅시다.

1. 예배자의 삶(25절 상).
평안했던 르호봇을 떠나 브엘세바로 옮겼습니다. 새로운 정착지에서 상황적 안정을 추구하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 앞에 예배드렸습니다.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라는 것은 환경적인 축복으로 인해 감사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며 말씀 앞에 무릎 꿇는 예배자의 삶을 보여 줍니다.

2. 생명나눔의 삶(25절 하).
이삭의 신앙적 삶의 특징은 '우물 파기'입니다. 당시의 우물은 생명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이삭은 이방 땅에서도 생명의 근원인 우물을 파서 많은 사람과 함께 나누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삭의 '우물 파기'는 단순히 자신만의 편안하고 풍족한 삶의 상징이 아니라, 참 생명의 샘을 파서 주변 사람들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는 사랑과 섬김입니다.

3.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28절).
블레셋의 왕인 아비멜렉이 이삭을 찾아와서 평화조약을 체결하기를 간청합니다. 그 이유는 이삭의 삶을 지켜본 결과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삭 삶의 여정은 자신의 유불리를 따지는 과정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하기를 선택하는 여정이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주변 사람도 인정할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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